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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쉬고 싶을 때, 그녀의 두 번째 시골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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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 전원속의 내집​

속리산자락 아래, 한가로이 자리한 작은 마을에서 돌담이 정겨운 시골집을 만났다. 인생의 새로운 막을 맞이한 그녀가 손수 매만진 마음의 별장이다.



현관에서 별채 테라스를 향해 바라본 거실 모습. 거의 새로 짓다시피 한 첫 집과 달리 이번엔 옛 모습을 많이 살려두고자 했다. 거실은 대청마루를 안으로 들인 공간으로, 창을 더 크게 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고.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경치가 강원도나 전라도에서 보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완만하고 포근한 산 풍경 앞에 팽팽했던 마음의 끈을 슬며시 풀어놓게 된다.

“백두대간 중간에 있는 동네라 원래 소나기가 잦대요. 비가 한바탕 쏟아지고 나면 산안개가 뽀얗게 피어오르는데, 그렇게 멋질 수가 없어요. 마치 스위스에 온 듯한 기분이라니까요.”


유리 벽 너머 테라스 의자에 앉은 집주인과 반려견 ‘(꼬)맹이’의 모습이 한가롭다.

아기자기한 자수 인형과 소품이 가득한 이 시골집의 주인장은 자신을 ‘꼬꼬’라는 닉네임으로 불러 달라며 소녀처럼 웃었다. 행정구역은 경북이지만 생활권은 충북에 더 가까운 마을, 상주 화북면 운흥리에 있는 마당 넓은 단층집이 그녀의 두 번째 시골집이다. 오빠 내외가 살고 있어 종종 들르던 이곳의 청정한 자연에 반해 언젠가 꼭 마당 있는 집에 살리라 다짐했고, 오랜 교직 생활을 마치자마자 지금 동네의 건넛마을에서 첫 번째 시골집을 고쳐 살았다. 그러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 3년여의 전원생활을 정리해야 했고, 그녀가 다시 이곳을 찾은 건 작년 가을. 아직까지는 서울을 오가며 두 집 살림을 하고 있지만, 집 안 곳곳 애정 어린 집주인의 손길이 가득하다.

2개의 방이었던 공간을 트고 서까래와 기둥을 드러내어 아늑한 공간을 완성했다. 옛 구들장을 살려두었지만, 바닥 전체가 데워지는 것은 아니라 기름보일러와 병행하여 쓴다. 책상에 앉아 수를 놓는 집주인 ‘꼬꼬’. 일본의 자수 작가 히구치 유미코의 스타일을 좋아해, 색을 많이 쓰지 않고 소박하고 심플한 디자인의 작업을 주로 하는 편이다.  /  집의 가장 안쪽, 옛 부엌이 있던 자리에 포근한 침실이 자리한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건 ‘아궁이’다. 아궁이에 불을 때서 바닥을 덥히던 옛 구들장을 그대로 살려두었다. 별채를 연결하고 대청마루를 안으로 들여 만든 긴 복도 형태의 거실에는 옛집에서 나온 나무문과 곱게 수 놓인 소품이 어우러져 따스함이 감돈다. 맞은편 유리 벽 너머 비치는 테라스의 청량한 풍경은 작은 온실 정원을 떠올리게 한다. 벽을 터서 하나의 공간으로 넓게 구성한 방으로 들어가면 나이 지긋한 서까래와 기둥이 정겹다. 구들장을 살린 덕분에 바닥이 높아서 막혀 있던 천장을 텄는데도 층고가 그리 높지 않아 아늑한 느낌이다. 나지막한 평상 침대는 손님을 위한 것으로, 원목 팔레트를 활용해 직접 만들었다. 그녀가 손바느질한 인형과 자수 액자, 여행길에 사 온 장식품 등도 책장 빼곡히 자리한다.

거실 한편에 놓인 패브릭 소파와 그 옆의 아궁이 무명천 위 꽃을 수놓는 모습 / 곳곳에 인형들은 대부분 공방을 운영하던 시절 만든 것이다.

“자수를 정식으로 배운 건 아니에요. 학교를 퇴직했던 시점, 남편 사업이 기울어 한창 힘들었어요. 그때 우연찮게 베갯잇을 색실로 수놓을 일이 있었는데, 뾰족뾰족 서 있던 마음이 차분히 누그러지더라고요. 깨끗한 무명천을 보며 ‘너 참 순수하구나’ 말을 걸게도 되고요(웃음).”



손바느질은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고 심경을 달래주는 친구가 되어주었다. 그렇게 자수에 푹 빠져 살다 지난 2년간 서울에서 여동생과 ‘길’이라는 자수공방을 운영하기도 했다. 지금 시골집에 가득한 작품들은 대부분 공방을 정리하며 가져온 것들이다.

작은 테라스 너머 마당을 바라볼 수 있는 별채 공간. 집을 다듬는 일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곱게 수놓인 커튼을 드리운 창과 자수 소품, 아끼는 아기용품이 진열된 선반. 키에 맞추어 동그란 손잡이를 새로 만들어 단 벽 조명도 사랑스럽다.  /  가장 좋아하는 인형 ‘엘리자베스’와 ‘오드리’ 그릇장 위에는 빨간색 실로 수놓은 액자와 여행 기념품을 장식해두었다.

“여기선 여든이 넘으신 건넛마을 할머니가 제 친구예요. 그 동네 가자면 차로 5분 정도 걸리는데, 제가 운전을 못 하거든요. 밥 먹으러 오라며 삼륜차 타고 데리러 오시면 제가 뒤에 타고선 탈탈거리며 가죠(하하). 올해는 장 담그는 걸 가르쳐주셨는데, 내년엔 술 담그는 법도 알려주신대요.”



장날이면 1~2시간에 한 대꼴로 오는 버스 안 진풍경이 그녀는 여전히 재미있다. 익숙한 얼굴들이 모여 시시콜콜 잡담을 늘어놓는 수다의 장이 펼쳐지고, 어느 정류장에서 누가 내리고 타는지 훤히 꿰는 버스 기사는 걸음 느린 승객을 느긋하게 기다려준다.

별채 앞 테라스 공간 집주인의 별명 ‘꼬꼬’와 어울리는 바구니와 액자가 한식 나무문과 멋스럽게 조화를 이룬다.  /  돌담 너머로 보이는 시골집 전경. 늘 머무는 게 아니라 마당 정리가 아직이지만, 오래 비어 있을 땐 정 많은 이웃집에서 나무에 물도 주고 잡초도 뽑아주곤 한다.

하루하루 주어지는 이 선물 같은 일상이야말로 이곳에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 아닐까. 그녀는 앞으로 이 정다운 동네에 오래오래 머물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로 받은 것을 보답할 생각이라고 했다. 예를 들면 농사일로 바쁜 이웃들의 바짓단이나 헤진 소매를 수선하는 일 같은. 문득, 평범하지만 보석 같은 시골의 장면 장면을 더 많은 이가 누릴 수 있도록 작은 찻집이나 민박집을 해도 참 좋겠다 싶다.



취재_ 조고은  |  사진_ 변종석

ⓒ 월간 전원속의 내집  Vol.235 www.uuj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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