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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을 누비는 젊은 건축가 조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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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속의 내집 2014년 11월

반짝이는 청년의 눈빛을 하고 왕성한 호기심을 뽐내며 도시를 누비는 젊은 건축가 조한. 블로그와 SNS로 사람들과 오랫동안 소통해 온 그가 얼마 전 <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이라는 책을 통해 사람들 앞에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

 

취재 정사은 사진 김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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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을 읽으며 마치 서울 골목길 안내서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책은 만들어놓고 보니 누구에게는 골목길 가이드의 역할을 할 수도 있고, 누구에게는 서울 역사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좀 더 들여다보면 제가 커온 이야기도 사이사이에 배어 있거든요. 사실 글을 쓰면서 저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했고요.

 

어떻게 책을 쓸 생각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우연히 만들어진 책이에요. 제 블로그와 SNS에서 솔직하게 털어놓던 생각을 본 CBS 교통방송의 요청으로 ‘도시는 살아있다’라는 코너를 진행한 것이 시작이었어요. 서울이라는 도시 곳곳을 누비며 공간을 설명하고 소개하는 코너였는데, 그걸 진행하면서 어느 순간 ‘나에게 좋은 도시가 좋은 도시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제게 서울은 어디에 뭐가 있는지 속속들이 아는 편안한 도시거든요. 매주 라디오 방송을 준비하면서 글감을 찾아다니고 글로 정리하면서 서울이라는 도시가 주는 의미를 정리해볼 기회가 오게 된 거죠.

 

‘건축은 왜 음악이나 영화처럼 감동이 쉽게 오지 않을까’라고 쓴 서문에 대한 답을 한다면

감동의 원인은 ‘시간성’이라고 생각해요. 손으로 만든 장식이나 공예품을 보면 그게 뭔지 몰라도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었을까!’직관적으로 느껴지잖아요. 오래된 공간들, 예를 들면 유적이 주는 아련한 공간, 폐허가 된 옛 에서 느껴지는 오래된 시간이 그 장소에 감동을 더하는 거죠. 중정을 통해 위를 올려다봤을 때 갑자기 늘 보던 구름의 움직임이 생경하게 느껴지고, 산에서 담쟁이 넝쿨을 보면 아무런 감흥이 없지만 공간사옥처럼 벽에 붙어 바람에 나풀거리는 걸 보면 또 다른 떨림이 느껴지는 것, 그런 장치들이 건축만의 ‘시간’을 담아내는 방식인 거예요.

 

골목길이 주는 의미도 같게 해석하면 될까요

골목길이 가지는 매력 중 하나는 뭔가 새로운 걸 발견할 것 같은 기대감이에요. 미로 같고 미지의 세계 같은 느낌이요. 골목길은 특별한 시작점도 끝점도 없으니 최대한 걸을 때의 감각에 촉을 세우는 게 아닌가 싶어요. 목적에 집착하면 놓치는 게 많잖아요. 예를 들어 서울부터 부산까지 고속도로를 타고 갔을 때, 그 중간 과정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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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로서 다양한 방면으로 활동하시는 것 같습니다

사람과 소통하는 새로운 방식을 찾아가는 것 같아요. 전에는 학자로서 학술적인 글을 쓰고 철학 명제같이 읽기 어려운 글을 썼는데, 라디오라는 매체를 통해 장소를 소개할 때는 책이 아니니 그림을 하나도 보여줄 수 없잖아요. 목소리만 가지고 이끌어야 하니 그게 큰 어려움이자 도전이었던 것 같아요. 그 새로운 과정이 마치 저에게는 골목길 투어와 같은 느낌이었어요. 골목을 따라 걷고 있으면 누군가 나타나 “이거 해보지 않겠어요” 제안해서 옆 골목으로 샜다가, 또 누군가를 만나 다른 골목길로 들어서는 흥미로운 여정이요. 책을 쓰면서 계속 저 자신을 발견하고, 장소를 설명하다 보니 그곳을 더 많이 알게 되고, 내 기억이 옳은지 재차 확인하러 가면 또 다른 게 보이고요.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에 망설임이 없는 것 같아요

저는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기도 하고, 독특하게도 그 호기심의 대상이 저 자신이에요. 어디를 갔을 때 거기가 왜 그런지도 궁금하지만, 내가 왜 여기를 좋아할까? 혹은 싫어할까? 이런 거에 대해 스스로를 탐구해요. 이 습성이 제 행동을 관통하는 공통점인 것 같아요.

 

책을 쓰면서 어려웠던 점이라도 있나요

소위 말하는 교수톤을 걷어내려 애를 굉장히 많이 썼어요. 잘난 체하고 가르치려는 말투를 걷어내기 위해 스스로도 노력을 많이 했고요. 원고가 일찍 끝나서 미리 정리해둔 챕터를 보면 아직도 그런 부분이 남아있어요. 마지막까지 악전고투하며 만진 글은 어느정도 그런 말투가 걷힌 것 같고요.

 

책을 읽은 사람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나요

‘공간을 이렇게도 볼 수 있구나’라는 걸 실마리로 해서 자신만의 공간을 찾고 느꼈으면 좋겠어요. 유명 연예인이나 정치가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곳보다 자신이 추억을 가지고 있는 장소가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메시지요. 저는 제가 보는 방식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정말 무서운 건 감상을 통제당하고 무의식적으로 세뇌당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좋다 나쁘다를 판단하는 건데 본인이 깨어있어야지만 돼요. 예를 들면 부엌 싱크대가 놓인 방식은 주부가 소외당하게끔 등을 지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더욱 무서운 건 의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학습된다는 점이에요. 이 책은 집에 관한 것은 아니지만, 좋고 나쁨을 스스로 찾으라 부탁하는 메시지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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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설계 작업은 뜸하신 것 같아요

충남 공주에 마을회관을 1년에 한 채 정도 디자인해요. 지금 7채째 하고 있는데, 그것도 껍질을 깨는 데 도움이 많이 됐죠. 처음에는 건축가로서 마을에 더 좋다고 생각하는 걸 강요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랬는데 어느 순간, 사람들한테 그렇게 하는 게 맞는지 회의가 들기 시작하더라고요. 이분들한테는 이미 취향이 다 결정되어 있고 바꿀 일도 없어요. 그러면 이곳을 사용할 분들에게 맞춰주는 게 맞을 것 같더라고요. 무엇보다 평상시 건축주 설득할 때 효과적이었던 ‘자연을 끌어 들인다’는 말이 이분들한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문만 열면 자연인데 무슨 소리냐!’ 이거죠. 중정, 천창 다 필요 없더라고요(웃음). 나는 내가 건축가라고 자부했지만 알고 보니 도시건축가였던거죠. 이제는 지방이라서 시공에 어려움이 있을 걸 고려해 디테일도 욕심부리지 않게 디자인하고, 페인트 색을 골라놔 봤자 벽지를 시공할 걸 뻔히 아니까 그것도 내려놨어요. 그러면서 아주 간단한 원칙만 가지고 작업을 해요. 비를 피할 수 있는 처마와 바람이 잘 통할 수 있는 구조 같은 것들이요.

 

뭐랄까, 해탈한 분위기인데요. 해보고 싶은 디자인이나 작업이 있을텐데

욕심을 많이 버리게 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고요, 너무 많이 버렸는지 앞으로는 좀 거창한 디자인은 자신이 없어졌어요(하하). 앞으로는 집을 갖기 힘든 사람을 위한 집을 디자인해봤으면 하는 생각이 있어요. 돈 많은 사람을 위한 저택 같은 집이 아니라, 잠시 지내는 간이주택이 됐든 조립식 주택이 됐든 저렴하고 살만한 집이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요새 건축학과 학생들은 예전과 어떻게 다른가요

10년 전과의 가장 큰 차이는 사회적 이슈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는 것 같아요. 아름다운 건물보다는 그 지역에 내가 공헌할 수 있는 방법을 많이 고민해요. 예전에 비해 삶에 가까이 다가가는 작업을 하려 애쓰고, 그러다 보니 작은 프로젝트가 많아요. 고시원, 작은 임대주택, 리모델링 비슷한 프로젝트, 한옥개조 등이요. 10년 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죠. 대규모 공간을 제안하는 친구는 몇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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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건축계는‘~~ 주의’같은 구심점이 있는 분위기였는데, 지금은 그런 단어가 무색해진 듯해요

우리도 모르는 새, 우리가 어떤 거시적인 미학의 헤게모니가 와해된 시대를 살게 된 것 같아요. 개중에는 그걸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는데, 생각해보면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방향을 찾아가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각자 취향을 존중받을 수 있고 모든 상황에서 당당하게 요구하는 시대적 감성으로 바뀌는 과정인 것 같아요.

 

학생들에게 바라는 건축의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개인적으로는 건축의 영역을 좀 더확장했으면 해요. 건축과를 나와 건물을 짓는 일로 스스로를 너무 한정하는 것 같은데, 오히려 건축공부를 하고 다른 분야에 가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더 많다고 생각해요. 건축을 보는 눈을 가지고 다른 데 가서 더 큰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보는거죠. 일반 기업체라도 상관없어요. 인문이나 공대와는 전혀 다른 감성, 보는 눈을 가지고 있거든요.

 

건축을 배운 사람의 특별함은 무엇인가요

‘건축이 무엇이냐’ 물어보면 저는 외국어를 하나 더 배우는 거라고 대답해요. 이 언어를 배우는 순간 새로운 세계의 문이 열리는 거죠. 이 언어를 가지고 꼭 말할 필요는 없어요. 문을 열고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갈 가능성을 갖게 되는 거죠. 학생들이 다양한 분야로 진출해서 건축을 제대로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지면 좋을 것 같아요.

 

글과 설계, 교육을 넘나드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앞으로의 행보도 기대됩니다

사람은 혼자는 못 살잖아요. 항상 누군가를 위해 손을 뻗고, 더 많은 사람과 얘기하고 싶은 욕구가 모두에게 있죠. 설계를 할 때도 물론 건축주는 한 명이지만, 설계자는 내 건물이 더 많은 사람들과 닿고 이야기했으면 하는 욕구가 있거든요. 저도 항상 그런 욕구가 있었고요. 어찌 보면 설계보다는 글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던 것 같아서 행복한 것 같아요.

집짓기랑 글짓기랑 말의 음률이 비슷하잖아요. 벽돌로 쌓는 집이나 글을 쌓아 짓는 글이나, 글과 설계, 교육 모두 다른 방식의 건축을 할 수 있는 통로라고 생각해요. 스스로 아직 글을 쓰는 것만큼 설계 작업을 했다고 생각지 않아요. 설계는 저도 부족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갈 길이 아직 멀죠. 하지만 이것도 제게는 배워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배움이 없는 순간은 아마도 호기심이 사라지는 때겠죠?

   


HAHN Design 건축가 조한

http://blog.naver.com/jluke313  jluke3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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