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규모 건축물 설계-감리 분리법안 시행,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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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간 건축계에 가장 큰 화두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단연 ‘소규모 건축물의 설계-감리 분리 법안’ 이슈였다. 지난해 법안이 통과되고 전면적으로 시행된 지 어느덧 7개월, 그간의 갑론을박과 현재의 상황, 그리고 앞으로의 변화를 진단해본다.
취재 조성일
+ 소규모 건축물의 범위는 어디까지?
소규모 건축물의 설계-감리 분리제도를 담고 있는 건축법 개정안은 「건축법」 25조(건축물의 공사감리)와 「건축법 시행령」 제19조의2(허가권자가 공사감리자를 지정하는 건축물 등) 및 시행규칙 제19조의3을 골자로 한다. 소규모 건축물은 ‘661㎡(200평) 이하의 다가구주택 및 다중주택, 495㎡(150평) 이하의 일반건축물과 분양을 목적으로 하는 30세대 미만의 공동주택 등’을 포함한다. 여기서 단독주택은 제외된다. 이 중에서도 건축주가 ‘직접 시공’하는 건축물 및 분양을 목적으로 하는 건축물에 한하여 감리는 허가권자(시·도지사)가 설계에 참여하지 않은 자를 공사감리자로 지정하게 된다. 신기술을 적용하여 설계하거나, 역량 있는 건축사(공모전 수상 등)가 설계한 건축물, 설계공모를 통하여 설계한 건축물은 제외된다.
+ 건축 시장에서 ‘집장사’를 몰아내자
현행 법령상 해당 소규모 건축물 범위는 건설업 면허가 없어도 건축주가 스스로 시공하는 것이 가능하다. 제도를 찬성하는 측에서는 중소규모 시장에 다수 분포된 소위 ‘집장사’라 불리는 업자들이 설계자와 감리자를 일괄 선정하고 직영 시공하면 감리자는 계약상 ‘갑’에 해당하는 집장사에게 비용을 지급받기 때문에 사실상 제대로 된 감리를 볼 수 없고 이는 곧 건축물의 품질 저하와 안전성 취약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이다. 건축물의 안전사고가 발생한 직후마다 해당 법안이 고개를 들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설계자·시공자·감리자 사이의 상호 견제를 가능케 하여 불법 행위를 사전에 방지하고 ‘집장사’를 시장에서 몰아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또한 감리의 중요성을 반영해 현실적인 감리비 책정이 필요하고 감리비의 공식적인 기준*을 적용해 건축 시장 전반의 열악한 업무 대가를 제대로 받는 견인차 구실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는 전망도 있다.
“집장사에 의한 부실시공 은폐 방지와 건축주 재산권 침해라는 관련단체들의 첨예한 대립 속에
지난해 설계-감리 분리제도가 통과돼 건축시장이 들썩인다.”
+ 설계-감리 분리는 건축주의 재산권 침해
법 개정의 의도와 취지를 보면 안전성과 품질 저하, 시공 중 불법 행위 방지를 막는 목적의 제도가 왜 그동안 논란이 되었는가 하는 의문점이 들 수 있다. 반대하는 측에서는 ‘일정 규모 이하’라는 포괄적인 규정으로는 합법적으로 작업하는 민간건축물 건축주의 재산권과 선택권을 침해하고 설계자의 원래 의도가 제대로 구현되지 않을 확률이 높아진다고 주장한다. 건축물의 안전성을 근거로 국가의 규제가 허용된다면 이는 민간건축물의 공공성을 인정한다는 뜻인데, 공공의 역할은 민간에 떠넘기고 감리 비용마저 온전히 건축주가 부담하며 선택권마저 박탈당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또한, 설계자는 단순히 도면만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건축물이 구축되고 완성되는 모든 과정의 담당자이다. 이들이 현장에 참여할 수 없다면 건축물의 품질을 보장할 수 없고, 100% 완벽한 설계도면 제출이 사실상 불가능하고 시공자가 시공도면을 그리지 않는 국내의 건축 환경에서 감리자가 확인할 수 부분도 제한적이라고 주장한다.
감리란 무엇인가
감리에 대한 해석을 두고도 다소 의견차가 있다. 「건축사법」 제2조에서 정하는 바에 따르면 공사감리는 ‘건축물 및 건축설비 또는 공작물이 설계도서의 내용대로 시공되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품질관리·공사관리 및 안전관리 등에 대하여 지도·감독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를 두고 공사감리자는 설계자의 의도구현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의견이 있는 한편, 법적인 부분만 감독하는 차원을 넘어 설계자의 의도를 파악해 성공적으로 공사를 끝내게 하는 것이 감리의 목적이라는 해석이 있다. 이렇듯 감리 업무를 바라보는 관점과 철학에도 양측의 차이가 있다.
+ 불완전한 제도를 보완하는 시도
디자인 감리와 안전 감리를 따로 하는 미국의 시스템을 제안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설계자가 디자인 및 구축과 관련한 감리를 보고, 구조 및 안전과 관련해서는 공공에서 진행하는 것이다. 이때 디자인 감리비용은 건축주가, 안전 감리 비용은 공공에서 지원한다. 그러나 국내 공무원들의 전문성과 불충분한 인력, 비용 확보 측면에서 어렵다는 지적이다.
한편, 지난 2월 국토교통부에서 고시한 건축공사 감리 세부기준 일부 개정에서는 ‘공사감리자는 건축물을 설계하는 설계자의 설계의도 구현을 위해 설계자의 적정한 참여가 이루어지도록 협조해야 한다’고 명시했지만, 다소 모호한 부분도 없지 않다.
+ 설계–감리 분리에서 직영 시공으로 쟁점 이동
지난 3월 13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는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 상정과 관련해 논의가 진행됐다. 그중 건축주 직영시공의 건축물 범위를 기존 주거용 건축물 661㎡(200평) 이하, 주거용 외 건축물 495㎡(150평) 이하에서 각각 연면적 85㎡(25평) 이하로 대폭 줄여야 한다는 의견이 주목을 받았다. 건축주 직영시공을 통한 세금 탈루와 직영공사로 위장 신고 후 무면허 업자에게 도급을 주는 이면 계약으로 인한 부실시공을 근거로 삼았다. 이는 단독주택을 직영공사로 짓고자 하는 예비건축주에게도 해당이 될 수 있다.
만약 이 법안이 통과가 되면 이전에 논의가 되었던 설계–감리 분리제도 논란도 잠식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최근 직영 공사의 현장관리인 배치제가 도입되면서 제도적으로 소규모 건축물의 경우 건축주 직영 시공 대신 전문건설업자와의 도급 계약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렇게 되면 건축주는 설계자를 감리자로 지정할 수 있어 설계–감리 분리제도가 무력해진다. 뿐만 아니라 안전과 디자인은 뒤로 한 채 오로지 저가 시공과 분양만 목적으로 한 건축주 직영 시공에 제동이 걸리면서 전반적인 시공품질 향상과 건물의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다만 단독주택 건축주들의 비용 부담 증가나 건설업 등록증 불법면허대여 확산에 대한 예방책도 필요해 보인다.
+ 건축계의 밥그릇싸움이 아닌 동반 성장을 꿈꾸다
건축물의 품질 및 안정성 확보와 공사 업무에 대한 정당한 대가, 설계자의 권리실현과 건축주의 합리적인 집짓기와 같은 이슈들이 양립할 수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면의 속뜻이야 어땠는지 몰라도 앞으로 내세우는 주장은 모두 한국 건축의 나아갈 길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설계–감리 분리제도와 관련한 대립을 통해 건축계가 서로 자성의 목소리를 내어 성장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이제 공은 직영 시공과 관련한 규제로 넘어왔다. 이 법안의 진행에 따라 설계–감리 분리제도의 향방도 판가름날 것이다.
도움말_ ㈜파크이즈건축사사무소 박인수 건축사 / 보편적인건축사사무소 전상규 건축사
참고자료_ ㈔새건축사협의회, 「건축과 사회」 2015년 봄·여름 통권 제2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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