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서귀포 유민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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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주 입장에서 본 우리나라의 훌륭한 건축물에 대한 주관적인 시점의 리뷰. 그 마지막 장소는 제주 서귀포에 위치한 ‘유민미술관’이다.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섭지코지로 107
정보 ▶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유민미술관은 섭지코지의 원생적 자연의 모습을 형상화하여 건축되었고, 이에 따라 관람자는 건물 곳곳에서 물, 바람, 빛, 소리를 느낄 수 있다.
1894년부터 약 20여 년간 유럽 전역에서 일어났던 공예 디자인 운동인 아르누보의 유리공예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에밀 갈레와 돔 형제, 외젠 미쉘, 르네 랄리크 등 주로 자연주의적인 소재와 영감을 표현한 프랑스 낭시 지역의 아르누보 주요 작가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www.yuminart.org
1. 유민미술관의 입구 / 2. 미술관에서 보이는 성산일출봉의 뷰. 건축적 액자 기법을 통해 시각적으로 파노라마 뷰를 만들어 준다. / 3. 노출콘크리트의 높은 담으로 시선을 차단하고, 제주 전통의 대문과 담을 통해 선택적으로 뷰를 보여준다. 안도 다다오가 손가락으로 뷰 프레임을 만들었을 때의 모습이 그려진다.
개인적으로 예비 건축주라면 반드시 가봐야 하는 장소이며, 안도 다다오(Ando Tadao)의 국내 작품 중 가장 명작이라고 생각되는 작품이 바로 ‘유민미술관’이다. 그 이유는 건축물로서 제주에 대한 추상적인 느낌을 오감으로 체감할 수 있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민미술관의 전 이름인 ‘지니어스 로사이(Genius Loci)’가 건축 의미적으로는 더 부합한다고 생각된다. 지니어스 로사이는 라틴어로 ‘지역의 수호신’을 뜻한다. 제주의 물, 바람, 돌을 안도 다다오 자신만의 프레임 안에 담아냈다. 마치 그가 사진으로 찍은 섭지코지와 성산일출봉의 풍경을 라이브 포토로 직접 체험하는 것 같다. 이 건축물을 통해 안도 다다오의 눈으로 제주의 자연을 관찰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도 계절별, 시간대별로 변화하며 시각·촉각·후각·청각·미각 그리고 공간감을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다니 이 얼마나 지니어스(Genius)스러운가!
4. 미술관의 프레임 속 프레임. 다중 구조의 프레임을 지나치면서 내면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체험을 한다. / 5. 유민미술관 옆 글라스하우스. 지포 뮤지엄이 있는 글라스하우스 또한 안도 다다오가 디자인했다.
유민미술관의 특별한 점은 내·외부의 건축 구조물만으로서 종교적·철학적·영성적 체험을 경험시켜주는 데 있다. 특별한 장식이나 문자 없이 단순히 재료의 배합과 시각적 차단, 3차원적 깊이감과 아득한 공간감을 통해 이를 구현해 내었다는 것이 재밌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체감하게 하는 것은 보다 다층위적인 정신세계를 구축할 수 있게 도와주며,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 깊은 사색을 하게 만든다. 사람의 뇌는 단 한 가지에 집중할 때 더욱 활성화되고 깨어 있는 느낌을 받는다. 마치 최면 상태에 들어가는 과정과 같다. 이는 권위 있는 사람의 언어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건축적인 경험을 통해 스스로 들어가기 때문에 더 강렬하다. 이러한 최면 효과적 건축물은 롱샹 성당(Notre Dame du Haut) 이후로 처음이다.
섭지코지의 동쪽 끝에 위치한 글라스하우스와 유민미술관은 기하학적인 형태로 조화를 이룬다. 하늘에서 보면 ‘<’자로 만들어진 글라스하우스의 왼쪽 꼭짓점이 유민미술관의 본체를 가리키고있다. 유민미술관의 정원 길과 글라스하우스의 지그재그 길 역시 기하학적 표상을 나타낸다. 실제로 본 후 위성사진으로 함께 보면 그 형태를 더 확연히 알 수 있다. 이 관점이 바로 안도 다다오가 대지 위에 그린 스케치와 같은 뷰로, 그 의도가 명확하게 보이는 부분이다. 마치 마니산의 첨성대처럼 신에게 질문과 메시지 보내는 것 같다.
미술관 입구를 지나면 제주의 자연을 떠서 담아 놓은 듯한 정원들이 있다. 특히 입구 쪽의 연못과 내부 정원의 유채 꽃밭 사이는 사람 키보다 높은 담이 있어 출입구를 지나지 않고는 건너편을 볼 수 없다. 내부 정원에 들어서면 직선으로 만든 길들이 ‘H’ 형태로 교차한다. 길의 중간에서 교차하므로 어디로 가야 할지 살피며 반대쪽을 바라보게 된다.
6. 미술관 입구의 연못과 경계 담과 내부의 길. 노출콘크리트 담벼락을 중심으로 좌우의 풍경이 확연히 달라진다.
미술관으로 가는 통로로, 한가지 방향으로 몰아가면서도 길의 각 끝점에서 의도한 뷰를 감상할 수 있도록 길을 배치했다. 이는 1차원에서 2차원으로 확장되는 길이다. 전체 길과 건물은 정남향에서 약간 서쪽으로 틀어져 있는데, 길의 끝에서 성산일출봉을 볼 수 있는 뷰를 고려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건물의 창이 아닌, 외부 정원의 조경과 길, 담으로 자연의 프레임을 풍광의 스케일 그대로 담아서 보여준다. 이는 깊이감을 더해 2차원에서 3차원으로 확장된다.
2열로 놓인 담의 틈으로 길을 만들어 옆길에 배치한 바람의 길은 사람이 다니는 길과 구분 지었다. 이곳을 지나 다시 가운데 메인 길로 가면, 양옆에서 물이 쏟아져 내리는 물의 길을 지나게 된다. 이 물의 길은 마치 바다가 갈라진 길처럼 느껴진다.
7. 건물 앞 직선으로 뻗은 길과 교차하는 돌의 길. 희망을 담은 돌탑이 출입 통로를 정확히 가리킨다. 이 과정에서 이 돌을 뒤로하고 미술관 전시실 건물로 진입하게 된다. / 8. 미술관 정원의 물의 길. 물이 양옆에서 쏟아져 내린다.
입구의 인포메이션동을 제외하고는 건물 외관으로 보이는 것이 없다. 노출콘크리트와 제주 전통 방식으로 쌓아 올린 돌의 담벼락만 존재한다. 시선보다 높은 담은 반대편으로 가지않고 서는 담인지 건물인지 인지되지 않는다. 건물인 듯하지만, 담에 뚫린 문을 지나야 비로소 담인지 알 수 있고, 이 담은 다층적인 레이어를 형성하고 있다. 벽체만 있고 천장은 하늘이 된다. 그래서 액자 프레임을 벽에 건 것이 아니라 바닥에 눕혀서 자연과 땅을 담아 보여준다.
건물이 드러나지 않고 지하에 묻혀 있기 때문에 외관은 지상에서는 담이지만 지하에서는 외벽이다. 건물의 외벽을 돌담이 한층 더 싸면서 돌담과 콘크리트 벽 사이의 공간에 사람이 드나드는 복도이자 외부 진입로가 생긴다. 이렇게 자연적인 돌담 벽체와 인공적인 노출콘크리트가 혼합되어 서로 조화를 이룬다. 자연을 손에 움켜쥐려는 서양과 자연 속에 일부가 되려는 동양의 건축적 사상이 혼합된 듯하다.
9. 현무암을 쌓아 올린 벽체와 노출콘크리트 외벽 / 10. 제주의 울퉁불퉁 불규칙한 돌과 노출콘크리트 건물. 반듯한 건물은 자연으로부터의 보호, 정돈된 생각을 상징한다.
11. 전시실 입구 / 12. 전시된 아르누보 유리 공예품. 유리 공예품에 빛이 들어오면서 어둡고 기하학적 공간 속 작품에 집중할 수 있게 한다. / 13. 전시품을 보기 위해 미로 같은 통로를 지나는데, 한가지 작품만을 위한 공간 안의 공간이 있어 작품의 가치가 높아진다.
전시실은 입구에서 정원을 지나 점차 아래로 내려가면서 건물의 외벽을 한 바퀴 돌아 지하에서 진입하게 된다. 딱히 출입문 없이 자연과 인간이 합작해서 만든 동굴 같은 구조물로 자연스럽게 들어간다. 내부 전시실의 입구는 아치 형태의 천장과 출입 통로로 인해 마치 고분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는다. 내부에서는 직선과 곡선, 원이 조화롭게 사용되었다. 직선은 이동을 유도할 때, 곡선은 그 흐름을 천천히 만들 때, 원은 멈춰 서서 집중하는 데 사용된다. 직접적인 공간 활용법에 대해 말하지 않고 공간의 목적에 따라 형태를 통해 심리적으로 유도되게 만드는 것이 심리 건축 기법의 뛰어난 점이다. 이러한 명작 건축물 속에서 건축가와 건축으로 대화하며 높은 경지의 오의(奧義)를 읽어낸다. 이 공간들은 미디어와 소리의 공명, 빛의 흐름을 통해 명상의 공간, 앎의 공간, 깨달음의 공간이 됨으로써, 정신적이고 영성적인 주제를 전달하기 좋은 장소가 되어준다고 생각된다.
14. 천장 쪽에서 빛을 들여오는 얇고 긴 띠 창(Slit Window)
15. 창에서 보이는 건물을 둘러싼 돌담의 모습. 이를 통해 이곳이 자연과 인공 구조물이 혼합된 곳 안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 16. 전시 공간의 조명 / 17. 글라스하우스에도 존재하는 얇은 띠 창
미술관의 창은 높은 곳에서만 퍼지는 고창(高窓)이다. 입구 쪽 지상 레벨에서는 낮은 창이지만, 지하로 깊이 내려가면 높은 공간감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지하 내부 공간에서는 고창이 되는 것이다. 빛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대가답게 빛이 바닥에 직접적으로 닿는 일은 없다. 만약 실제로 대지 레벨 위에 외부 높은 담 없이 건물만 짓고 높은 고창을 설치했다면, 분명히 태양의 각도에 따라 바닥까지 레이저로 쏘는 듯한 빛의 띠가 생겼을 것이다. 이곳엔 고창은 있지만 그러한 빛은 없다. 각도와 외부 담, 건물 레벨의 많은 장치로 인해 통제되었다. 롱샹 성당의 하늘에서 찍어 누르는 빛과 다르게 공간의 높이감만 느낄 수 있는 빛이다. 이 빛이 있어 내부의 형태가 은은하게 감지되고 그에 따라가는 길이 은근하게 유도된다.
18. 콘센트 부분 디테일 / 19. 환풍기는 노출콘크리트의 동그란 무늬를 옆으로 늘려 놓은 듯하고, 화장실의 ‘<’ 기호는 글라스하우스를 하늘에서 본 것과 같다. / 20. 선들이 정확하게 일치하는 글라스하우스의 내부 디테일. 다층 레이어 구조는 유민미술관의 통로와 일치한다. / 21. 미술관 휴게실에 있는 바닥의 모래. 현무암을 잘게 부순 듯한 모래가 깔려 있어 건물 내부에서 인공적인 자연을 느낄 수 있다.
‘창문 창(窓)’이라는 한자는 ‘구멍 혈(穴)’에 ‘사사로울 사(厶)’와 ‘마음 심(心)’이 합쳐진 글자로, 사람의 감각 기관인 눈·코·입·귀·피부 구멍을 통해 오감을 느껴 일어나는 개인적인 마음들이 드나드는 문이라는 의미이다. 건축의 구성요소와 그 심리적 의미를 이토록 잘 표현한 한 글자가 또 있을까. 이 의미 그대로 사용했을 때 창문이라는 것은 단순히 빛과 공기의 드나듦 뿐만 아닌, 마음을 드나들게 만드는 것임을 유민미술관에서 확인했다.
미술관의 내부 벽체는 노출콘크리트로 마감되었다. 노출콘크리트는 마감 선과 면을 맞추기 까다로워 선들을 정확히 일치시키기 위한 시공자의 많은 땀과 수고가 전해진다. 콘센트와 스위치가 매립되어 있고, 환풍기 구멍과 같은 기능성을 위한 장치도 전체를 아우르는 하나의 디자인 철학 안에서 형상이 만들어졌다. 작품을 비추는 조명을 제외하고 인공적인 조명 사용이 배제되어 내부는 어둡고 동굴 같은 느낌을 준다.
미술관의 외부는 글라스하우스와 연계된다. 다른 건물이고 다른 테마를 가지고 있지만, 그 디자인 언어는 동일하다. 유민미술관이 땅속에 숨겨져 있는 유물과 같은 곳이라면, 글라스하우스는 곶의 끝에 드러나 바다로 길게 뻗어 세워졌다. 유민미술관의 빛은 절제되었지만, 글라스하우스는 이름 그대로 수많은 창으로 바다와 빛을 실내로 들여온다. 그래서 빛이 직접적으로 들어오는 쪽은 블라인드가 내려져 있다. 이렇게 다각도로 커튼월을 설치할 경우에는 빛이 들어오는 향과 시간에 따라 자동으로 센서가 감지해 블라인드를 조절하는 내부적 장치가 필수다. IoT가 점차 쉽게 구현할 수 있게 보급됨에 따라 이러한 건축적 심미성을 기능적으로 보완해주는 자동제어장치가 더해져야 결국 사람에게 이로운 외부 환경과 호흡하는 유기적인 건축물이 만들어진다.
22. 글라스하우스의 외관과 내부의 뷰 / 23. 미술관 외부 조형물. 제주도 전통 돌담이 바람에 풍화되면 노출콘크리트가 나타나는 것이 형상화되었다. 윤회와 자연과의 융합에 대한 사상이 보인다. / 24. 외벽 담에 만들어진 띠 창 개구부 / 25. 외벽의 띠 거울을 통해 비친 제주의 돌
이로써 시리즈로 연재된 국내 건축 명작 탐방기를 마친다. 건축주로 출발하여 마을의 마스터플랜을 만들고, 건물 계획 설계와 직영 시공까지 경험했다. 건축주와 설계자, 시공자의 모든 입장이 되어 보며 결론 내린 건축을 잘하는 단 한 가지 법칙이 있다. 바로 ‘건축주, 설계자, 시공자의 건축적 소양만큼 건물이 지어진다’는 것이다. 이 소양을 높이기 위한 가장 우선적인 방법이 바로 직접 가서 자신만의 관점에서 건축물을 감상하고 공간과 자재를 느껴보는 것이다.
연재를 하는 동안 추천한 장소들은 찾아가 보기 좋으면서 건축적 소양을 크게 높일 수 있고, 집을 지을 때 영감을 받을 수 있는 곳이다. 발전은 주체 못 할 흥겨움이고, 공부는 발전을 위한 끝없는 즐거움이듯 건축적 소양 함양을 위한 나의 명작 건축물 탐방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앞으로도 유튜브 채널 ‘부동산 리뷰하는 건축가’를 통해 집짓기 노하우 및 예쁜 건축물과 집들을 소개하는 영상을 지속적으로 공개하려 한다. 집을 짓기 전 도움될 내용을 많은 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바람이다.
글&사진_ 손창완
이 글을 쓴 손창완 씨는 4년 동안 집짓기와 관련된 부동산 투자, 건축, 목조주택, 설계·시공, 재료, 건축법, 부동산법을 공부하고 6개월간 독일, 프랑스, 스위스, 오스트리아, 스페인 등지의 유럽 명작 주택을 순례했다. 이를 바탕으로 직접 건축주가 되어 판교에 단독주택을 짓고, 건축주 역할로 경기도에 마을을 만들었다. 책 <건축주만이 알려줄 수 있는 집짓기 진실>의 저자이며, 건축박람회와 공중파 등 언론 매체를 통해 건축주를 위한 강연을 하고 있다. 현재 집짓기 컨설팅 및 심리 인테리어 서비스 밈스페이스(www.memespace.co.kr)와 건축가 설계 및 단독주택 전문 중개 플랫폼 앱 빌드트리(www.buildtree.co.kr)를 운영 중이다.
구성_ 김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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