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 식물을 그리는 아틀리에 생강
본문
경의선 책길 끝자락, 서울 창전동 골목에 있는 이선화 작가의 작업실을 찾았다. 아늑한 나만의 공간에서 그녀는 식물을 모티프로 향기를 만들고, 여러 작가들과 협업해 허브 워크숍을 연다.
봄을 알리는 생강나무처럼
“작업실 이름의 뜻을 많이들 물어보시는데, 흔히 먹는 그 생강은 아니에요. 험한 산속 바위틈에서 자라는 ‘생강나무’를 보고 이름을 따다 지었죠.”
2009년, 이선화 작가는 오래 다니던 디자인 회사를 그만두고 서울 문래동 철공소 골목 1층에 카페를 겸한 향기 공방을 열었다. 나이가 지긋하게 들 때까지 손으로 뭔가를 만드는 일을 하며 살고 싶은 생각에 내린 결정이었다. ‘생강(Saengang)’은 그런 자신의 굴곡진 삶이 생강나무와 닮은 것 같아 붙인 이름이다. 가장 먼저 꽃을 피워 봄을 알리는 생강나무처럼 내 인생에도 어서 봄이 깃들기를 바라는 마음도 담았다.
무려 8년 가까이 이어온 문래동 생활은 즐거웠다.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과 콘셉트 식당을 열거나 전시,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했다. 다만 개인 작업에 집중할 수 없는 환경이 못내 아쉬웠다. 그래서 이곳, 창전동 골목길의 건물 2층에 작업실을 새로 꾸렸다. 카페 운영을 완전히 접고 작업실 이름 앞에는 ‘아틀리에’라는 말이 붙었다. 생강나무를 만나려면 반드시 산 깊숙이 들어가야 한다는데, 그 이름에도 더 충실해진 셈이다.
벽 선반에는 그동안 작업한 캔들이 진열되어 있다. / 작업을 위한 식물 재료를 다듬고 있는 이선화 작가 벼 이삭과 그 형태, 질감을 살려 만든 캔들이 나란히 놓였다.천장에 매달아 창가에 연출한 캔들 장식 / 워크숍에서 만든 패브릭 달력. 의류브랜드의 재고 원단에 숫자 도장을 찍어 달력을 그려 넣고, 계절 식물로 리스를 디자인해 완성했다. ©아틀리에 생강
그 순간에 어울리는 향기를 찾는 일
작업실을 찾았을 땐, 천연 시럽과 음료 및 디저트를 만드는 브랜드 ‘인시즌’과 함께 밀랍 초 DIY 워크숍을 마친 다음 날이었다. 이선화 작가는 창전동에 와서도 레스토랑, 일러스트 작가 등 다양한 팀과 허브를 주제로 워크숍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티(Tea) 브랜드, 요가원 등과 협업해 차 마실 때나 명상을 위한 향기 제품을 만들기도 한다.
특히 인상적인 건 향기를 이미지화한다는 것. 식물의 색감과 형태를 살려 캔들, 오너먼트를 디자인하는데, ‘식물홀더’는 그녀의 색깔을 오롯이 보여준다. 향초 표면에 솔방울, 나뭇가지, 말린 허브 등이 회화처럼 표현되고, 녹는점이 다른 두 가지 왁스를 사용해 불을 붙이면 안쪽 초만 타고 외곽은 남는다. 향초 자체가 홀더가 되는 것이다.
선반의 재료를 정리하는 이선화 작가. 문래동 작업실에서부터 제작해 쓰던 가구를 파티션 삼아 작업 공간과 쇼룸 겸 워크숍 공간을 분리했다. ‘타임라인’ 캔들. 시간의 흔적을 남기며 타들어 가는 모습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아틀리에 생강 / 아틀리에 생강의 캔들은 향기를 시각적으로도 느낄 수 있다. 워크숍을 진행하는 날이면 사람들로 가득 차는 테이블 공간
“예전엔 ‘이것 아니면 안 돼’ 했던 것에 다른 답도 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들이 오더라고요. 그런가 하면, 한참 동생들 의견을 듣고 생각의 방향을 돌리기도 하고요.”
작업의 지향점이 있느냐 묻자 그녀가 내어놓은 현답. 정해둔 건 없다. 그때그때 좋은 걸 할 뿐.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녀를 닮은 공간과 향은 한결같이 은은하고 편안하다.
취재협조_ [생강] 서울시 마포구 서강로11길 17 2층, www.atelier-saengang.com
취재_ 조고은 | 사진_ 변종석
ⓒ 월간 전원속의 내집 / Vol.239 www.uujj.co.kr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