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당림리 공방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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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시골 마을, 겸손히 자리 잡은 목조주택 한 채가 있다. 불쑥 찾아가도 더운 밥 한 그릇 덤덤하게 내어줄 권오영, 신미영 부부가 사는 집이다.
취재 조고은 사진 변종석
“동네가 쪼끄마하니 좋잖아요. 땅값이 많이 오르지 않을 곳을 일부러 찾아다녔어요.”
강촌역에서 가평 방향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당림리’라는 소박한 마을이 나온다. 권오영, 신미영 부부의 집은 이곳의 작은 초등학교 앞에 있다. 20여 년 전, 아파트 생활을 답답해하는 집안 어른들이 소일거리로 텃밭을 일구고자 마련한 땅이다. 오영 씨는 당시 30~40년이 지나도 값이 오르지 않을 땅을 수소문하고 다녔는데, 이런 그에게 부동산 주인은 ‘거참, 희한한 사람’이라 했더랬다.
그에게 땅값이 올라 얻게 될 수익보다 중요한 건 ‘인심’이었다. 사람이 몰리는 동네에는 오래 자리 잡고 살기보다 투자 목적으로 집을 짓거나 땅을 사고팔려는 이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다. 풍광이 빼어나거나 경제적 가치가 높지 않아도 이웃 간에 끈끈한 정이 있는 곳, 그래서 선택한 곳이 바로 이 땅이다. 세월이 지나 땅이 놀게 되자 부부는 이곳에 집을 지었다.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대문 옆, ‘함께’라 새긴 오영 씨의 서각작품이 낯선 이를 따뜻하게 맞아준다.
설계를 맡은 a0100z 성상우 소장은 생활협동조합에 몸담고 있는 아내 미영 씨 지인의 소개로 만났다. 이들이 만나자마자 건축가와 건축주의 연을 맺었던 건 아니다.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두 집 내외가 함께 경주 양동마을, 안동의 고택들 등을 찾아 ‘집 여행’을 다녔다. 오다가다 성 소장이 설계한 집에 들르기도 하고, 대포 한잔하며 밤늦도록 회포를 풀기도 했다. 그렇게 서로 조금씩 알아가다 보니 그리는 집의 모습과 가고자 하는 길에 통하는 면이 많았다. 부부는 기꺼이 성 소장에게 집을 맡겼고, 성 소장은 집터에 다녀온 다음 날 바로 스케치를 내놓았다. 한옥을 닮은 ‘ㅁ’자 구조에 2층 본채, 손님이 마음 편하게 묵어갈 수 있는 별채, 오랜 시간 서각 작업을 해온 오영 씨의 작업실과 나무 창고가 있는 집이었다.
체육교사였던 오영 씨는 집을 짓기 위해 퇴직을 앞당겼다. 그는 건축가에게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와 공법으로 집을 짓자고 제안했고, 성 소장 역시 그 말에 적극 동의하며 본격적인 집짓기가 시작됐다. 공사기간만 장장 6개월이 걸렸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재촉한 적이 없다. 매일 현장에 나가 ‘잡부’를 자처했고, 후반 3개월은 시공사 대표와 둘이서 창고와 공방의 목재마감을 도맡기도 했다. 2013년 12월, 마침내 집이 완공되고 지난 1년간 문턱이 닳도록 드나든 손님은 벌써 셀 수 없을 정도다. 좋은 사람을 ‘내 집’에 초대하고 싶다던 꿈은 부부에게 이제 즐거운 일상이 되었다.
▲ 공방에서 서각작업을 하고 있는 오영 씨 모습. 그는 하고 싶은 걸 하며 사는 지금의 삶이 정말 행복하다고 말한다.
▲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대문이 집주인을 닮았다. 언제 누가 찾아와도 따뜻하게 반겨주는 집이다.
▲ 두 번째 겨울을 맞은 마당. 수돗가에는 오영 씨의 서각작업을 위한 칼갈이 네 개가 나란히 서 있다.
“여기도 봐요, 거실 벽이 삐뚤잖아요. 이곳에 있던 나무들을 하나도 베지 않고 집을 지은 거예요. 땅을 살 때 심은 묘목들이 이만큼 크게 자란 건데, 쟤들이 먼저 주인이니까 그에 맞춰서 집을 앉히자 했죠.”
다수의 수상경력, 전시 이력을 가진 ‘서각가’ 오영 씨의 집에는 직접 서예를 하고 나무에 글씨를 새긴 작품이 곳곳에 자리한다. 손수 써내려간 글귀를 읽다 보면 한결같이 고집해온 바가 있다. 바로 ‘자연스러움’. 그의 집도 같은 맥락에 있다. 만만하면서도 겸손한 집일 것, 대신 ‘무슨 집이야?’하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집이어야 한다는 것이 그가 성 소장에게 요구한 첫 번째 조건이었다. 편안하고 자연스러우면서도 미적인 감각을 살린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거라며, 그는 다시 한 번 성 소장의 속을 헤아린다.
집이 지어진 지금, 이제 부부에게 남은 소망은 돈이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 철이 든 사람이나 안 든 사람 등 가릴 것 없이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이 집에 편하게 다녀갔으면 하는 것이다. 상처 입은 이들이 잠깐 와서 마음을 풀어놓기도 하고, 지나가다 문득 생각날 때 부담 없이 들를 수 있는 집이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겠느냐는 오영 씨의 말에 진심이 묻어난다. 손님 전용 공간으로 꾸린 황토방에는 ‘나그네 방’이라 이름 붙이고, 주방과 욕실까지 따로 만들어 누가 와도 불편함 없이 머물다 갈 수 있게 배려했다. 알면 알수록 정 많고 진국 같은 주인을 똑 닮은 집이다.
“막걸리 맛있게 익으면 그때 와서 꼭 한잔하고 가요.”
눈이 펑펑 내리던 어느 날, 강원도 첩첩산중에 사는 친구에게서 뜬금없는 초대를 받은 적이 있다며 말을 이었다. 안 그래도 험한 산길에 눈까지 쌓여 평소라면 엄두도 못 낼 길이건만, 오랜 벗의 부름에 그는 바로 집을 나섰다고. 그때 눈발을 헤치고 도착한 친구 집에서 먹었던 잘 익은 김치와 막걸리 한 잔, 친구와 웃으며 즐기던 한담을, 그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래서 얼마 전엔 마당에 김장독을 묻고 움막을 지어 광을 만들었고, 조만간 막걸리도 손수 빚을 생각이다. 절친한 친구뿐 아니라 집 앞을 지나는 이 누구라도 문을 두드리면 반갑게 대접하고 싶은 마음. 그는 그런 마음으로 집을 짓고 매만지며 살아간다. 이런 그를 떠올리고 있자니, 언제 올지 모르는 달큼한 막걸리 소식이 더욱 기다려지는 밤이다.
▲ 나그네방 앞 마루에서 바라본 정경
▲ 천장과 벽에 나뭇결을 그대로 노출해 따뜻한 느낌을 주는 본채 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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