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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와 고양이, 그리고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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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196-02 / 전원속의 내집

일전에 어느 목회자와 식사를 같이 할 자리가 있었다. 그는 본인의 이야기, 즉 목사가 되고 나서의 삶에 대해서 목회자로서 잘해 왔는지, 지금은 잘하고 있는지 스스로 의문을 갖고 있다고 고백했다. 나는 그의 자책 아닌 자책의 말을 듣고, 자연스레 ‘왜 그런 생각을 하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나에게 대답 대신 뜬금없는 질문을 던지며 대화를 이어갔다.

“소장님은 혹시 집에서 반려동물을 키우시나요?”
“네, 고양이를 두 마리 키우고 있습니다.”
“예쁘죠? 같이 있으면 기분이 좋고, 계속 지내다 보면 새로운 발견도 있고.”
“그렇죠. 아무래도 키우면서 더 정이 가고, 더 알게 된 것도 많죠.”
“그러면 소장님께 여쭤볼게요. 고양이에 관한 책을 아무리 열심히 보고 연구한다고 해서 고양이를 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누군가 고양이의 생김새나 특성을 아주 실감나게 설명해준다고 해서 그 이야기만 듣고 고양이에 대해 잘 알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는 말을 이어갔다.

“예를 들어서 고양이에게 관심을 갖게 된 맨 처음 이유는 각기 다를 수 있죠. 그들이 고양이에 대해 알고자 하는 노력도 여러 방법이 있고요. 어떤 사람들은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 지식을 먼저 쌓으려고 하겠죠? 수의사라면 해부학적으로 접근할 수도 있고요. 중요한 것은 시작을 어떻게 했느냐가 아니라는 거죠. 고양이를 피상적으로 보는 것보다 직접 만져보는 것, 함께하는 것이 그 동물에 대해 더, 그리고 제대로 알아갈 수 있는 방법 아닌가요?”

그래서 그는 스스로에게 회의를 느낀다고 했다. 수많은 신자들에게 지금껏 해온 말들이 어쩌면 인터넷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리뷰와도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그래서 요즘은 ‘그 분’과 함께 하는 삶이 얼마나 좋은지, 그 경험을 공유하고 전파하며 신자들에게 스스로 느껴보라고 하는 것이 본인의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고 말을 맺었다.

나는 이 대화의 문맥 속에 ‘고양이’ 대신 ‘건축’ 혹은 ‘집’이라는 단어를 대입해 본다. 집짓기의 과정에서 설계의 역할을 다해야 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과연 그 목회자처럼 스스로의 일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했었나? 그리고 사실은 건축주들보다 내가 조금 더 알거나 경험이 있다는 이유로 나를 대단한 것처럼 과대포장하지는 않았을까? 나의 오만함이 건축주들을 불행한 경험으로 이끄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을까? 지난날 나의 행실에 대해 끊임없이 자성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진정 잘해야 했던 것은 어떻게 보면 아주 단순한 역할일지도 모른다. 나의 역할이라는 것은 집짓기의 과정과 그 다음에 이어지는 ‘그 집에서의 삶’이 성공적이라고 느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지금도 가끔 패러디되고 있는 광고 카피가 있다.

“나는 춤을 글로 배웠습니다, 나는 요리를 글로 배웠습니다.”

이 광고는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는 뜻)이라는 고사성어를 떠올리게 하며 우리에게 묘한 웃음을 선사한다. 어떤 일이든 몸소 경험해야 확실히 알 수 있다는, 탁상공론(卓上空論)의 허무함과 위험함을 우리에게 일깨워주기도 한다.

근대 건축의 역사와 훌륭한 건축물의 이야기를 책에서 백 번 읽었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인터넷에 넘쳐나는 멋있는 건축물 사진을 열심히 스크랩한다 한들 내 집을 잘 지을 수 있을까? 건축물은 글이나 사진으로 잘 감상하라고 만들어진 것이 절대 아니다. 그 건축물이 존재하는 그곳에서, 즉 어떤 날씨, 어떤 온도, 어떤 햇빛과 그늘, 어떤 바람, 어떤 소리와 냄새 등 주변의 환경과 조건이 함께 했을 때, 그 맥락에서만 비로소 실제를 느낄 수 있다. 그것은 어느 누구의 말이나 사진, 동영상을 통해서는 대신 전해질 수 없는 가치이다.
또한 남이 받은 느낌과 동일하게, 남이 정한 방식대로 그 건물을 사용해야 한다면 그것 또한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같은 시간, 같은 곳에 있더라도 그 공간에서 받는 느낌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아무리 저명한 건축가가 설계했다 한들 그 집은 건축주의 삶을 담아낼 그릇일 뿐, 집주인이 마음대로 사용하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집에 대해서 너무나 열심히 공부하고 아주 깊게 파고들어서 연구한다. 그리고 큰 기대를 하며 꿈을 꾼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 기대가 너무 큰 나머지, 사람들이 내놓은 결과물은 자꾸만 현실과 괴리되어 간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묻고 싶다. 만약에 고양이를 집에서 키우기 시작했는데 고양이의 습성이나 성격이 당신의 기대했던 모습과 많이 달랐다면, 그것은 고양이에게 잘못이 있는 것일까? 그 답은 아마도 아닐 것이다. 원인은 고양이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상상 속에서 자신만의 고양이를 만들어냈던 당신에게 있다. 그렇다고 후회하거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실제로 경험하는 일만큼 제대로 그 대상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 경험이 당신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 것인지, 그 경험을 당신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바로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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夫耳聞之不如目見之, 目見之不如足踐之, 足踐之不如手辨之.
무릇 귀로 듣는 것은 눈으로 직접 보느니만 못하고, 눈으로 보는 것은 발로 직접 밟아 보는 것만 못하며, 발로 밟아 보는 것은 손으로 직접 판별해 보는 것만 못하다. 《설원(說苑) -정리(政理)》

 

 

박성호 aka HIRAYAMA SEIKOU
NOAH Life_scape Design 대표로 TV CF프로듀서에서 자신의 집을 짓다 설계자가 된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의 단독주택과 한국의 아파트에서 인생의 반반씩을 살았다. 두 나라의 건축 환경을 안과 밖에서 보며, 설계자와 건축주의 양쪽 입장에서 집을 생각하는 문화적 하이브리드 인간이다. 구례 예술인마을 주택 7채, 광주 오포 고급주택 8채 등 현재는 주택 설계에만 전념하고 있다. http://bt6680.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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