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 그리고 채움 / 발코니집 Voidw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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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는 이름처럼 이 집은 발코니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가족을 위해 비워지고 가족에 의해 채워질, 발코니가 있는 집을 만났다.
취재 김연정 사진 신경섭
속초시청에 오래 근무해 온 부부와 그들의 두 아이를 위한 집이다. 대지는 도심지이지만 농촌의 풍경과 아파트, 교육기관 등이 뒤섞여 있는 도농복합지역에 위치한다. 바로 옆에는 옥수수밭과 작은 시골집이 있고, 뒤로는 거대한 대학교 공연장과 부속어린이집이 서 있으며, 그 너머로 설악산이 마치 콜라주처럼 두서없이 다가온다. 눈이 많이 오는 지역임을 고려하여 물이 고이지 않는 박공지붕을 선호하는 건축주와, 2층에 자신의 독립된 공간과 옥상테라스를 원하는 아이를 위해 박공지붕과 평지붕이 결합된 매스를 착안했다. 단순한 사각형 박스형태의 매스에 경사지붕으로 중심부를 높여 주고, 가장 높은 부분은 평평하게 만들어 테라스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콘크리트 박공지붕은 지붕 경사를 충분히 완만하게 하여 내부에 과도하지 않은 천장 높이를 구성하면서도, 방수에 유리한 구조를 가진다. 또한 실내 구조벽을 최소화하여 최대한 가변적인 평면을 만들고 아이들이 커가면서 변화하는 가족의 요구사항에 대응할 수 있도록 했다.
▲ 거실에 면한 발코니는 목재 데크로 마감되어 마당과의 연계성을 높였다.
◀ 마을 전경을 바라볼 수 있는 지붕 테라스 ▶ 농촌의 풍경과 도심의 시설이 함께 공유하는 곳에 집이 위치한다.
HOUSE PLAN
대지위치 : 강원도 속초시 노학동
건물용도 : 단독주택
대지면적 : 285.4㎡(86.33평)
건물규모 : 지상 2층
건축면적 : 142.56㎡(43.12평)
연면적 : 136.23㎡(41.20평)
건폐율 : 49.95%
용적률 : 47.73%
구조재 : 철근콘크리트조
외부마감 : 노출콘크리트
내부마감 : 석고보드 위 페인트
설계 : 에이엔디 정의엽 070-8771-9668 www.a-n-d.kr
▲ 단순한 박스 형태의 매스에, 경사지붕으로 중심부를 높여 완성한 외관
발코니는 외부와 내부 사이의 온도차를 완충시키기 때문에,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의 기후변화가 심한 지역에서는 에너지사용량을 줄일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이다. 법적으로 바닥면적에서 공제해주는 1.5m 폭의 아파트 발코니는 한국의 현대주거공간에 나타나는 보편적인 특징이다. 이런 발코니는 단열뿐 아니라 내부공간의 경험에 있어서 그 역할이 중요함에도 건축적으로 그리 큰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특히 아파트 발코니는 내부공간이 확장되면 곧 사라지거나 잡다한 기능을 수행하는 무의미한 공간으로 인식되었다.
아파트에서 살아온 건축주를 위한 이 단독주택에서 발코니를 잉여공간이 아니라 집을 구축하는 본질적인 요소로 사용하고자 했다. 집의 중앙부는 공용공간이 되고 외부에 면해 각 기능을 위한 실들을 나누었다. 이때 방과 방을 분할하는 것은 벽이 아니라 발코니 공간이다. 발코니는 반듯한 사각형의 내부공간을 사다리꼴 모양으로 파고들면서 주변의 양호한 풍경과 향으로 내부를 열어놓는다. 사방에서 파고들어온 크고 작은 발코니 공간으로 인해, 내부는 하루 종일 변화하는 빛과 풍경이 스며들고, 집 안 어디나 밝은 느낌을 유지할 수 있다. 단순한 외관에 비해 내부는 다채로운 평면과 높이를 가진 공간으로 구성된다.
이 집의 발코니는 ‘비어진 벽(Voidwall)’으로서 내부공간을 분할하고 내·외부 공간 사이의 관계를 주도한다. 하나의 방은 하나의 발코니를 가지고, 발코니들의 성격이 이 집을 규정한다. 발코니의 다양한 모양과 이질적인 마감 재료의 사용은 극히 절제된 내부공간의 단순함과 대조되어 선명히 드러난다. 발코니로 나눠진 각 방들은 대형 미닫이문을 열어 마치 거실의 일부처럼 통합될 수 있다. 결과적으로 1층은 하나의 공간으로 쓰일 수도 있고, 여러 개의 공간으로도 분할이 가능한 가변성을 갖는다. ‘비어진 벽’으로서의 발코니는 거주공간에 많은 역할을 하기 위해 비워져 있다. 작은 침실의 발코니는 대지 동쪽의 출입구와 소나무 숲으로 열려있어 멋진 전망과 함께 출입하는 사람을 반길 것이다. 거실에 면한 넓은 발코니는 목재 데크로 마감되어 휴식공간이자 마당과 연계성을 높인다. 안방 발코니는 석재타일로 마감하여 화분을 기르거나 수집물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쓰일 수 있고, 서재 발코니는 벽면녹화와 음지식물을 기르는 실내정원이 된다. 부엌 발코니는 다용도실의 확장된 공간으로 사용되면서 벽난로의 장작을 쌓아놓고 빨래를 건조하는 등 다양한 서비스공간으로 쓰일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발코니가 시간이 흐르면서 가족의 삶의 방식과 취향에 맞게 유동적으로 채워질 것이고, 외부와 내부를 적절히 연결하는 매개공간이 된다는 것이다.
▲ 1층 내부. 각 공간과 연계된 발코니가 한눈에 들어온다.
▲ 화이트 컬러로 심플하게 완성한 주방의 모습
▲ 발코니의 천창과 유리벽에는 자외선 차단 선스크린을 설치하여 과도한 온도 상승을 막았다.
PLAN – 1F / PLAN – 2F
▲ 안방 발코니는 석재타일로 마감하여 내부와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건축주는 추운 지역임을 감안하여 단열에 효율적이면서도 개방적이고 밝은 공간을 원했다. 평당 450만원이라는 제한된 예산 때문에 추가 공간인 발코니는 아주 경제적인 방식으로 시공되어야 했다. 창호나 마감재의 질을 높이지 못하였으나, 발코니는 이 지역의 추위와 바람에 대응하면서 실내공간을 넓고 개방적으로 만들었다. 그 외에도 외부에 면한 벽면에 붙박이장이나 창고를 배치하여 단열성능을 구조적으로 강화하면서도 수납이 잘되도록 평면을 구성하였다. 벽난로의 위치는 집의 중심부에 두어 열기를 내부 전체로 확산시키도록 하였다. 1층 바닥 전체에 사용된 타일은 관리하기에 편할 뿐 아니라 겨울철 실내로 깊이 들어오는 태양열을 축열하여 실내의 온기를 오래 유지하게 한다. 발코니의 천창과 유리벽에는 자외선 차단 선스크린을 설치하여 더운 계절에는 과도한 온도 상승을 억제하도록 했다. <글 _ 정의엽>
건축가 정의엽
인하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토론토대학교 건축대학원에서 건축학 석사를 받았다. 2010년 에이엔디(AND)를 설립하여 건축과 가구를 비롯한 다양한 스케일의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2011년 한국건축가협회가 수여하는 ‘올해의 건축 BEST 7’을 수상하였으며, 2012년 한일현대건축교류전 ‘같은집 다른집’, 2014년 ‘최소의집’ 전시의 초대작가로 참여하였다.
주요작품 문호리주택(Topoject), 서후리스튜디오(Skinspace), 거제도펜션(Aggrenad)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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