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으로서의 일상, 목인헌(木仁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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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숲을 이룬 마을 중턱, 목멱산과 인왕산이 바라다보여 이름 지어진 목인헌이 있다. 과거와 현재가 소통하는 그곳에는, 오늘도 다양한 풍경이 일상이 되어 공존한다.
취재 김연정 사진 노경
▲ 리노베이션 전 목인헌의 내·외부 모습
목멱과 인왕이 보이는 내사산의 응봉자락, 마치 집으로 숲을 이루고 있는 것 같은 풍경의 중간허리쯤에 목인헌이 위치한다. 성곽 아래 동네에 숨은 듯, 목인헌은 그곳의 일상 그리고 풍경처럼 스며들어 있다. 이 높이에서 바라보는 서울의 경관은 좌측 목멱의 길게 누운 듯한 모습과 우측의 인왕의 당당한 기세를 길게 펼쳐볼 수 있는, 매우 드문 체험을 제공한다. 비슷한 규모의 집들이 불법으로 증축한 혹들을 달고 층층이 겹치고 쌓이면서 시간과 함께 만들어 낸 마을의 모습은 이제 서울에서도 보기 드문 풍경이다.
▲ 꽃 그림 계단 골목과 새 옷을 입은 목인헌이 조화를 이룬다.
HOUSE PLAN
대지위치 : 서울시 종로구 이화동
지역지구 : 2종 일반주거지역, 정비(재개발)구역, 문화재(서울 성곽)보존영향검토구역
대지면적 : 151.8㎡(45.91평)
건물규모 : 지상 2층
건축면적 : 51.3㎡(15.51평)
연면적 : 75.6㎡(22.86평)
건폐율 : 33.8%
용적률 : 49.8%
구조재 : 조적조, 목조
외부마감 : 드라이비트 외단열, 아스팔트싱글 지붕
시공 : 이안건축
설계 : 이충기 02-3461-3841 cklee@uos.ac.kr
총 공사비 : 6,000만원
▲ 경사지의 다양한 레벨과 시간, 사람들이 만들어낸 일상적 풍경
1958년, 일제강점에서 해방된 후 낙산 성곽과 이화장 사이의 서쪽 사면에 수십 채의 현대식 타운하우스가 들어섰다. 지역의 역사를 일상으로 담고 있는 서울 성곽 아랫동네는 뜨거운 서향 햇빛이 수평으로 그림자를 드리우는 고도에 30~45도의 경사지. 사람이 살기조차 어려워 보였으나, 주택영단(주택공사의 전신)의 주도하에 우리 기술로 지은 신식 2층 집이 새로운 역사와 일상을 시작했다. 작은 집들은 가파른 산지에 높은 축대와 골목을 형성하면서 층층으로 풍경을 만들며 배치되었다. 그렇게 시작한 낙산 성곽아래 이화동 마을은 수도와 연탄 보급이 어려운 산동네의 특성을 보이며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모이는 동네로 바뀌어 갔다. 면적과 높이를 임의로 확장하고 증축하면서 독특한 형태의 마을로 진화하였다. 법과 제도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았던 당시, 필요에 의해 너도나도 처마 밑을 확장하고 2층 외부를 방으로 만들면서 골목을 제외하고는 빈 땅이 없을 정도로 거의 모든 집들이 확장되고 팽창되었던 것이다.
지금의 이화동은 벽화마을로 더 많이 알려진 동네다. 이곳의 시공간은 지금도 1960년 정도쯤에 멈추어 있다. 2006년, 낙후된 마을 분위기를 바꾸려 시작한 공공디자인사업으로 낡고 퇴색한 마을의 골목과 담에 진한 화장이 입혀졌다. 예쁘라고 그린 형형색색의 그림들로 무엇을 감출 수 있을까? 이곳에는 그림으로 덮을 수 없는 사람들의 일상이 있었고, 산동네가 만든 독특한 풍경이 있었다. 골목과 사람, 마을이 원래 가지고 있었던 생명력, 그것이 마을을 유지하는 힘이었다. 그로부터 수년이 지나 시간의 마술이 다시 한 번 작동하면서 골목과 벽화도 어느덧 일상처럼 마을의 한 풍경으로 자리 잡았다(요즈음은 이곳에 외국관광객까지 줄을 서서 사진을 찍으며 그들의 추억을 남긴다).
뉴타운의 광풍이 불어 재개발 조합까지 결성된 이 마을에, 2012년부터 뜻있는 사람들이 마을가꾸기에 나섰다. 주민과 함께 천천히 발전되어가는 마을, 필요에 따라 조금씩 변화하는 마을, 현재의 골목 일상과 마을풍경이 유지되는 마을을 꿈꾸는 일이 시작되었다.
▲ 60여 년간 견뎌온 어진 나무의 흔적. 그리고 철거 전 나온 철재 못과 애자.
▲ 1층 출입구 홀 전경. 지붕과 콘크리트 벽체 부분은 기존 재료를 노출했다.
▲ 2층에 위치한 방
▲ 창을 통해 바라본 인왕산의 경치
◀ 2층으로 오르는 단정한 계단실 ▶ 곳곳에서 옛것과 새것의 조화가 엿보인다.
▲ 발코니에서 바라본 난간 너머 도시의 파노라마
건축가의 디자인이 매순간 무엇인가를 선택하는 것으로 결정되는 것이라면, 목인헌의 리노베이션은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설계의 비중이 크고, 기존 공간을 들어내고 덧붙이는 선택과 결정이 많이 필요했던 과정이었다.
먼저 60여 년 동안 임의로 진행된 증축공간을 들어내고 1958년에 지었던 원형을 확인하고자 했다. 새것과 옛것의 표현, 즉 시간 표현을 위한 마감 재료와 색, 새로운 기능의 추가, 도시를 바라보는 경관, 마을을 구성하는 풍경인자로서의 자세와 대응에 대해 고민해야 했다. 그것은 일상으로서의 풍경과 물리적 실체로서의 건축에 대한 표현을 어느 수준으로 할 것이며, 건축가로서 어느 정도의 깊이로 개입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였다.
마을의 다른 집과 마찬가지로 마당이나 외부공간을 모두 증축하여 방으로 사용하고 있었던 집 목인헌은 1층 30㎡, 2층 15㎡의 2층 구조에 단열 없이 6인치 블록 한 장으로 벽을 쌓고 ‘⊥’자형 지붕틀에 박공지붕이 올려져 있었다. 이화동 마을의 집들은 증축으로 외형이 바뀌는 과정에서도 이 집은 초기에 지은 2층 주택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목인헌 내부는 1958년의 목재가 60여 년 인고의 시간 동안 나무 본연의 생물적 힘을 이기지 못하여 뒤틀리고 틈이 생기는 과정을 거치며 온순하고 어질게 되고, 이제는 얌전하게 제자리를 잡고 있는 상태다. 내부에 사용된 1950년대 생산되었던 시멘트블록의 벽체와 목재를 껍질도 벗기지 않은 채 사용했던 목조지붕틀은 이 집이 가지고 있는 시간의 가치를 극대화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서구식 건축기술을 습득한 목수나 조적공의 기술은 단순하고 투박했으나, 천장 안의 지붕 목구조는 시간이라는 마술사 덕에 오히려 훌륭하고 멋진 모습으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이곳에서는 좌측으로 목멱산(남산의 옛 이름)과 우측으로 인왕산, 그 사이의 도시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목멱과 인왕이 보이는 집, ‘목인헌’이라 이름을 지었다. 아울러 이 집에는 젊음을 누르지 못했던 나무들이 뒤틀리고 갈라진 흔적으로 드러난다. 60여 년 전 껍질도 못 벗은 채 이곳에 와서, 콘크리트와 못에 강제되고 추위와 더위에 노출되어 온몸을 뒤틀며 힘으로 저항했던 나무. 그들이 60년의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이제는 어질대로 어질어져 있었다. 나무가 어질어진 집, 어진 나무의 집, 그래서 다시 한 번 ‘목인헌(木仁軒)’이라 불러본다. <글_ 이충기>
건축가 이충기
현재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베니스비엔날레(2010)를 비롯해 블라디보스톡비엔날레(2008), 베를린DAZ초청전(2008), 프랑크푸르트DAM초청전(2007), 홍콩센젠비엔날레(2007) 등에 참여해왔다. 최근 건축설계 외에 마을가꾸기, 공공디자인 등의 사회활동과 도시, 건축의 재생 및 재활용 분야에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주요작품 서울시립대학교 선벽원, 제주전문건설회관, 진광교회, 옥계휴게소, 인삼랜드휴게소, 가나안교회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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