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벗하며 살다 / 송추 단풍나무집
본문
앞으로 많은 상업시설이 자리하게 될 땅이지만, 그렇다고 평생을 자연과 함께 해온 건축주 삶에서 자연과의 교감을 배제할 수는 없었다. 송추의 아름다운 풍경을 일상의 동선 속에 차곡차곡 담고자 한 단풍나무집을 만났다.
취재 김연정 사진 정광식(건축가 제공)
송추 단풍나무집은 소나무와 가래나무가 많아 송추(松湫)로 불리던 송추계곡 인근에 위치한다. 근처에서 식당을 운영했던 건축주는 계곡 훼손을 막기 위해 조성된 집단이주시설 택지를 분양받아 3층 규모의 상가주택을 짓기를 원했다. 평생을 자연과 벗하며 살아온 건축주는 옛 식당 근처에 있던 단풍나무를 옮겨 심고, 가족처럼 키워온 반려견 진돌이와 함께 살고자 했다. 그러나 똑같은 크기로 개성 없이 구획되어 있는 집단이주시설은 소비와 향락에 찌든 안타까운 도시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게 될 것이 자명했다. 그곳은 40채가 넘는 상가들이 서로 경쟁해야 할 어수선한 상업시설 사이에서 주거시설이 양립해야 하는 땅이었다.
▲ 화이트 스터코로 외벽을 마감한 단풍나무집의 측면 모습
HOUSE PLAN
대지위치 경기도 양주시
건물용도 근린생활시설, 주택
대지면적 324.90㎡(98.28평)
건물규모 지상 3층
건축면적 193.98㎡(58.68평)
연면적 520.31㎡(157.39평)
건폐율 59.70%
용적률 160.14%
구조재 철근콘크리트구조
외부마감 스터코, 벽돌, 적삼목
시공 코아즈건설㈜
설계 아이디어5아키텍츠(강영란, 김민정, 김영훈, 장성희, 정경미)
070-8146-2860 http://blog.daum.net/kyr824
▲ 북한산 둘레길로 이어지는 후면도로변은 집의 인지성을 살리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 집단이주시설 단지에서 집과 공존해야 하므로 정면은 단순하고 심플한 조형으로 계획했다.
▲ 안과 밖의 경계의 의미를 갖는 ‘하심정’은 자연과 바람이 드나드는 비움의 공간이 된다.
적절한 임대면적을 확보하면서 송추계곡의 자연을 담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과제였다. 상가의 인지성을 잃지 않으면서 ‘집’이라는 이름으로 공존해야 하는 건축적 장치가 필요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도로 전면은 상가처럼, 북한산 둘레길로 이어지는 후면도로변은 집처럼 보이도록 계획했다.
단풍나무집에 사계절이 아름다운 송추의 풍경을 모두 담기에는 펼쳐진 자연이 너무 넓고 자유로웠다. 그래서 집 안에서 바라보는 고정된 자연이 아니라 동적인 움직임을 통해 다채로운 풍경을 담을 수 있도록 연출하고자 했다. 3층 집에 오르는 계단을 밖으로 돌출시키고 방향을 여러 번 꺾어 길처럼 느껴지도록 하고, 일상의 동선 속에서 다양한 풍경을 만날 수 있도록 했다. 자연과 교류하며 살아온 가족들의 정서를 반영하기 위해 마당에 있는 단풍나무와 진돌이를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볼 수 있도록 그 모양과 위치를 고려했다.
계단을 천천히 올라 북한산과 마주한 채 서 있는 현관문을 열면 처음 만나는 공간이 ‘하심정(下心亭)’이라는 누마루다. 계단이라는 길을 통해 만났던 자연이 내부로 들어와 불현듯 단절되지 않도록, 안과 밖 경계의 의미를 갖는 정자와 같은 공간을 연출했다. 하심정은 풍경을 품기 위한 동적인 움직임과 집 내부에 비춰질 수동적 풍경 사이의 전이 공간인 셈이다. 또한 하심정이 시각적인 장치로만 머무르지 않도록, 송추계곡을 향해 흐르는 바람이 원활하게끔 맞통풍으로 계획하여 자연스러운 공기의 흐름을 유도했다. 이렇듯 전통적인 우물마루 형태의 하심정은 평생 장사를 해왔던 건축주를 위한 공간이자 자연과 바람이 드나드는 비움의 공간이다.
▲ 시야를 가리지 않는 주방창은 송추의 자연을 파노라마로 담아낸다.
▲ 높고 입체적인 공간을 통해 길게 굴절되는 빛은 거실을 한층 깊어보이게 한다.
▲ 창호의 개방감을 극대화하고 높이차를 활용한 코너의 틈을 열었다.
◀▲ 다락방 천창은 창호 프레임을 감춰 감성적인 자연과 조우할 수 있도록 했다. ▶▲ 수평으로 길게 비워진 외벽은 북한산을 프레임에 담아낸다. ▶ 계단을 한 층 오른 후 중간 계단참에 이르면 마당의 붉은 단풍나무가 내려다보인다.
집 안에서 자연의 능선과 빛을 품는 건축적인 방법으로 남향 창호의 개방감을 극대화하고 코너의 틈을 열었다. 거실 천장은 3.5m로 높게 하여 햇빛과 수려한 풍경이 조망되도록 했고, 주방 창은 수평으로 길게 내어 싱크대 앞에서 공연장과 산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게 했다. 다락방 천창은 창호 프레임이 보이지 않도록 설치하여 자연과 더욱 가깝게 조우하도록 했다. 다락방에서 문을 열고 지붕으로 나가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자연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는 툇마루가 나타난다.
단풍나무집은 사람이 자연을 품는 방법도 중요했지만, 최대한 자연스럽게 집이 자연에 담기는 방법이 더욱 중요했다. 상가와 집이 공존해야 했던 이유처럼 집단이주시설 내 건물이 송추계곡의 이방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가능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하얀 스터코로 마감한 단순한 사각의 매스에 단풍나무 색과 같은 붉은 벽돌로 감싸 집을 감추었다. 땅에서부터 지붕 다락방을 향해 오르는 사선의 외피가 자연을 향해 자신을 드러내는 유일한 방법이다. 단풍나무 집은 빽빽하게 들어설 집단이주시설에서 마음을 내려놓듯 자신을 내려놓아 비움의 여유를 만들었다. <글 _ 강영란>
건축집단 아이디어5아키텍츠(IDEA5 ARCHITECTS)
건축은 멀고 높은 자본주의 꼭대기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일부로서 가깝고 낮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쉽고 친근하게 얘기 나누고 싶다. 이들은 ‘다양하고 신선하고 재미있고 창의적인 좋은 생각’의 건축을 추구하고자 ‘아이디어5’라는 건축 공동체를 만들어 사람이 머무르는 공간에 대한 새롭고 즐거운 실험을 펼쳐가고 있다.
※ 월간 <전원속의 내집> www.uujj.co.kr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주)주택문화사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