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 만드는 화가 김창옥 씨, 가족과 함께 집을 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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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의 한 마을에 독일에서나 볼 법한 이국적인 집 한 채가 들어섰다. 분홍색 벽면과 나무 프레임이 예쁜 이 동화 같은 집은, 창옥 씨네 다섯 식구가 2년 6개월에 걸쳐 지은 패시브-팀버프레임 하우스다.
취재 조고은 | 사진 변종석
▲ 다락의 부부 공간. 모든 가구는 창옥 씨 스튜디오에서 탄생했다.
▲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내는 분홍집
목공스튜디오 ‘Kim&Kim Studio’를 운영하는 김창옥 씨는 서양화를 전공한 화가다. 영국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약 10년 동안 교수 생활을 했던 그에게 목공은 가족과 떨어져 있던 외로운 마음을 달래준 취미생활이었다. 그러던 것이 어느덧 직업이 되어 ‘가구를 만드는 화가’가 되었고 2011년 여름, 땅을 보러 간다는 친구를 따라나섰다가 운명처럼 만난 이곳 경기도 포천에 집을 짓게 된다. “추운 지역이지만 햇볕이 잘 들고, 바람도 세지 않은 지형을 가진 곳이었어요. 보자마자 집 짓고 살기 딱 좋은 땅이라고 생각했죠.” 뜻이 맞는 지인들이 모여 1,500평 정도의 땅을 함께 샀고, 이중 그가 제일 먼저 집짓기에 나섰다. 집은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리기보단 가족과 함께 직접 짓기로 했다. 그렇게 그와 목공스튜디오에서 같이 일하는 딸 눈이, 처조카 기웅이가 주축이 되고 아내 조경옥 씨, 아들 수로와 천둥이가 힘을 보태어 장장 2년 6개월의 좌충우돌 집짓기 여정이 시작되었다.
▲ 팀버프레임이 그대로 드러나 웅장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의 주택 내부
창옥 씨는 약 20년 전, 독일계 프랑스 사람이 강연했던 한 국내 워크숍에서 팀버프레임에 관해 처음 접했다. 아무래도 예술, 창작과 관련한 직업이다 보니 목공이나 건축 관련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국내에 통나무집 건축이 인기를 끌 때에는 통나무 건축 워크숍에 다녀왔고, 경복궁 복원 과정, 일반 목조주택 건축 과정에 참여했던 경험도 있다. “건축을 업으로 삼을 정도로 전문 교육을 받았던 건 아니에요. 언젠가 내 집을 짓기 위해 틈틈이 배워두었던 거지요.” 다양한 집짓기 공법을 경험해보니 저마다의 장단점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모든 공법을 하나의 집에 쓸어 담을 수는 없었다. 가장 중심이 되는 공법을 선택해야 했는데, 그에게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이 바로 ‘팀버프레임’이다. 일부러 갖가지 장식을 하지 않아도 나무프레임 자체가 자연스러운 인테리어가 되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영국에서도 관련 교육 과정을 수강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 배웠던 것들을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도 컸다. 그런데 문제는 ‘단열’이었다. 짜맞춤 공법이 중심이 되는 팀버프레임이나 한옥은 기둥과 기둥을 끼워 벽체를 만들기 때문에 그 틈으로 찬 기운이 스며들 수밖에 없다. 이를 해결할 방법이 무엇일까 고심하던 그는 팀버프레임 구조에 패시브 하우스의 단열 공법을 더한 집을 지어보기로 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한 번도 행해진 적 없는 실험적인 집짓기였다.
가구를 만드는 일이나 집짓기나 모두 나무를 재료로 하는 일이지만, 생전 처음 하는 건축 과정이 쉬울 리는 없었다. 그런데 창옥 씨는 눈이와 기웅이를 데리고 아직 터도 잡혀 있지 않은 상태에서 치목을 하기 시작했다. 나무로 짓는 집은 잘 건조된 목재를 사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우연치 않게 강원도 춘천의 한 건축 현장에 4년 동안 잘 건조된 목재 남은 것이 있어 얻어온 것이다. 치목, 골조 세우기, 기밀 및 단열 시공, 지붕 얹기 등의 집짓기의 주요 작업은 나무를 만지는 데 익숙한 목공 스튜디오 식구들이 맡고, 전기설비, 창호 설치 등은 전문기술자의 손에 맡겼다. 천장에 기밀 시공을 하거나 기와를 올릴 때는 암벽등반용 장비에 매달려 하루에 4~5시간씩 작업했다.
“눈이는 그때의 후유증으로 얼마 전까지 허리 교정 치료를 받았어요. 한여름 땡볕에서 작업할 때는 저도 생전 처음 빈혈로 고생하기도 했죠.”
아내 경옥 씨는 작업으로 한창 지치는 시간이면 맛있는 새참을 내오거나 각종 행정 관리 업무를 도맡았다. 비싼 독일 패시브 하우스 자재를 사용하기도 했고 생각보다 공기가 많이 길어지는 바람에 지출 비용이 예산을 훨씬 초과했지만, 집이 끝까지 지어질 수 있었던 것은 묵묵히 응원하고 지원해준 아내 덕분이다. 아직 중학생인 두 아들도 자재를 옮기는 일이나 청소 등의 잡다한 일을 맡으며 집짓기에 참여했다. 그렇게 길고 길었던 초보 목수 가족의 고된 집짓기는 ‘동화 속 분홍집’으로 완성됐다.
▲ 다섯식구의 집짓기 여정
▲ 아늑하고 편안한 딸 눈이의 공간
“실용적 성향이 강한 미국 사람들은 팀버프레임으로 집을 지을 때 골조를 세우고, 바깥을 냉장고처럼 스킨(Skin)으로 씌워 밀봉하는 방법으로 기밀성과 단열성을 강화합니다.” 미국의 팀버하우스는 기둥과 벽체 사이에 틈이 없어 유럽의 전통적 팀버하우스보다 훨씬 따뜻하고, 안으로 프레임이 더욱 튀어나와 내부에 볼륨감이 생긴다. 분홍집은 이런 방식을 적용해 지은 집으로, 바닥 난방 없이 벽난로만 하루에 두어 번 불을 피워도 종일 훈훈하다. 아무리 추운 겨울에도 한 달에 드는 난방비가 5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하지만 단열을 강화한 대신, 골조가 안팎으로 드러나 웅장한 팀버하우스 특유의 외관은 잃을 수밖에 없었다. 예술과 창작을 하는 사람으로서 디자인도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외벽에 나무 프레임 장식을 덧붙여 전통적인 팀버하우스의 모습을 재현했다.
집에는 명확하게 구분된 방이 없다. 두 개의 다락에 첫째 딸 눈이와 부부의 공간이 있는데, 그마저도 문이 없고 트여있는 공간이다. 거실 한편에 자리 잡은 서재는 원래 두 아들의 방이 있어야 할 자리이지만, 집짓기 과정에서 공간이 답답해 보인다는 이유로 없앴다. 그 바람에 두 아들은 정해진 잠자리 없이 집의 이곳저곳을 유랑하고 있다. “불편하지 않으냐고들 묻는데, 그렇지는 않아요. 조만간 아들 둘에게는 직접 별채를 지어 자기 공간을 만들게 하려고요(웃음).”
▲ 높은 천장이 시원스러운 거실
▲ 모든 가구를 직접 짜 넣은 주방은 썬룸의 채광으로 늘 환하다.
주방 근처에 자리 잡은 썬룸(Sunroom)과 집의 중심이 되는 벽난로는 식구들을 한데 모아주는 공간이다. 썬룸의 테이블에서는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밤에는 벽난로 주변에 둘러앉아 타닥타닥 타들어 가는 장작 소리와 함께 하루를 마감한다. 집 안에서도 햇볕을 한껏 받으며 여유를 즐길 수 있는 동남향의 썬룸은 주변 풍경과 하늘을 집 안으로 끌어들인다. 벽난로는 거실과 주방을 자연스럽게 구분하면서 집의 구심점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이 공간들은 기밀성과 단열성이 떨어져 패시브 하우스 공법에 반하는 것들이긴 하지만, 디자인과 함께 창옥 씨가 포기할 수 없는 요소 중 하나였다.
분홍집에서 창옥 씨 가족들은 자연을 즐기고 이웃과 소통하며 이제 한창 전원에서의 삶을 꾸려가고 있다. 경옥 씨는 이웃 할머니의 유정란을 대신 팔아주기도 하고, 딸 눈이와 함께 김치를 담가 독에 묻어두었다가 알맞게 익으면 이웃에 나눠주기도 한다. 피자, 햄버거만 찾던 아이들은 이제 김치, 된장찌개는 물론 나물 반찬 하나만 있어도 밥 한 그릇이 뚝딱이다. 골조부터 마감까지 식구들이 직접 도맡아 지은 집에서 펼쳐지는 새로운 일상. 이는 곧 이들이 살아온 삶의 연장선이자 집짓기 과정을 통해 받은 선물이다.
Kim&Kim Studio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죽엽산로298번길 106-43
010-7777-5891, http://blog.naver.com/eyegold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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