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처럼 영원히, 네모의 꿈 ㅁㅁㅁㅁㅁㅁㅁㅁㅁ집
본문
작은 네모 중정에서 시작해 여러 개의 방이 될 수 있는 트랙을 이룬 집.
변화하는 가족의 삶과 처음 그대로의 창밖 풍경을 오롯이 품어낸다.
네모난 주택의 정면. 아이가 손으로 그린 그림처럼 아홉 개의 창문 크기가 모두 조금씩 다르다.
작은 공원처럼 조성한 지하로 향하는 길. 쾌적한 지하공간을 만들기 위해 건물에서 분리시켰다.
택지 개발 지구에 건물을 설계한 건 처음이었다. 대지를 방문했을 땐 미처 도로가 조성되기도 전이었다. 아직 포클레인 바퀴 자국이 남아있는 평평한 땅 위에 빨간색 말뚝만 네 개 박혀 있었다.
원래 멍석 깔아주면 몸이 굳는 법. 허허벌판 위에 건물을 설계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보통은 설계를 시작할 때 사이트 주변을 산책한다. 주변 건물과 동네 분위기를 만끽하며 새로 지어질 건물을 상상하곤 한다. 하지만 주변에 아무것도 없으니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무턱대고 하얀 종이에 스케치를 시작했는데 네모, 네모, 네모, 네모… 네모난 모양만 그리고 있었다. 땅이 네모 모양이었으니까.
‘나중에 지어진 집이 우리 집 창문을 막아 버리면 어쩌지?’, ‘높은 건물이 세워져 마당이 온통 그늘이 되어버리면 어쩌지?’… 주변에 아무 건물도 없으니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이 컸다. 다른 건축가들은 택지개발지구에서 어떻게 설계를 시작할까. 도대체 무엇을 확신하고 설계를 시작할 수 있는 걸까?
주택 외관은 네모의 직선과 가지런한 벽돌의 어울림이 단정한 느낌을 준다. 경사지를 활용한 지하 주차장은 진입로를 곡면으로 디자인했다.
①서재 ②창고 ③주차장 ④주방 ⑤거실 ⑥자녀방1 ⑦자녀방2 ⑧작전본부 ⑨화장실 ⑩샤워실 ⑪ 안방 ⑫취미실
지하 주차장, 창고로 이어지는 계단이 있는 주택의 후면. 1층에는 3개의 문을 두어 상황에 따라 이용할 수 있다.
주택 건물과 별도로 계획된 지하 공간은 채광이 풍부해 밝고 쾌적하다.
처음 설계를 시작한 무렵 유모차에 앉아 있었던 건축주의 아기가 언젠가부터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 더 지나 건축주의 임신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방이 하나 더 필요하겠군요.”
건물 주변 환경만 변하는 것이 아니다. 집 안에서도 끊임없는 변화가 계속된다. 태어나고, 나이 들고, 떠나가고, 다시 돌아오고. 가족은 계속 변할 것이었다. 그렇다면 집은 어느 시점에 초점을 맞추어서 설계해야 할까? 두 명의 어린아이와 두 명의 부부를 위한 집이어야 할 것인지, 학생이 된 후의 아이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인지? 아니면 가장 오랜 시간 함께 지내게 될 두 부부를 위한 집이어야 할 것인지. 아이러니하게도, 어느 것 하나 확신할 수 없다는 사실이 확신으로 다가왔다.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다는 사실. 그것만이 내가 유일하게 확신할 수 있는 것이었다.
주택의 내부 공간은 작은 중정을 중심으로 복도처럼 순환하며 이어진다.우선, 네모난 땅의 가운데에 작은 네모를 그렸다. 굴뚝이라고 하기엔 크고 중정이라고 하기엔 조금 작은 공간인데, 빛과 바람이 통하는 통로 역할을 하도록 계획했다. 그리고 모든 방의 창문이 가운데 네모를 향해 열리도록 했다. 그렇게 이 집만의 빛과 바람을 확보하게 되었다. 주변에 어떤 건물이 들어서더라도 사라지지 않을.
중정을 중심으로 동선이 이루어지는 주택의 구조를 읽을 수 있는 단면 모형.중정을 둘러싼 더 큰 네모를 그렸다. ‘ㅁ’자 통로가 생겼다. 그것이 이 집의 실체다. ‘ㅁ’자 통로를 걸으면 중정을 둘러싸고 온종일 집 안을 맴돌 수도 있는데, 이것은 곧 뛰어다닐 두 아이를 위해 더없이 좋은 환경이다. 벽에 부딪혀 다시 돌아올 필요 없이 마음껏 뛸 수 있으니까.
이 집은 방이 몇 개인지 알 수 없다. 문을 어떻게 닫는지에 따라 2개부터 6개까지 가변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벽을 어떻게 여닫느냐에 따라 방이 생기기도 없어지기도 한다. 벽마다 숨어 있는 문을 닫으면 복도는 방이 된다. 처음에는 같은 방을 쓰던 꼬마들이 자라면서 각자의 방을 가질 수 있다. 벽을 모두 닫으면 두 개의 방과 두 개의 복도가 생겨난다. 방은 책상과 침대를 배치하기에 적합한 면적이다. 복도는 수납실 혹은 드레스룸으로 쓸 수 있다. 벽면이 모두 수납이 가능하도록 계획되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공간(땅)이 낭비되는 것이 싫어서 집을 되도록 크게 짓는다. 하지만 큰 집에 살다 보면 잘 쓰지 않는 공간이 반드시 생겨나게 마련이다. 잠시 집을 떠나 있는 가족의 방, 빛이 잘 들지 않는 방, 구석에 있는 방……. 보통 지하실은 어쩔 수 없이 버려지는 공간이다. 습하고 어둡고 퀴퀴한 냄새가 배어난다. 지하에 있는 물건은 처음엔 필요해서 둔 것들인데 나중엔 손대기 싫어서, 혹은 손댔다가 일이 커져버릴까 봐 못 버리는 물건이 되어버리고 만다.
설계의 시작점이 되어준 중정 모습.HOUSE PLAN
대지위치 ≫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대지면적 ≫ 265m2(80.16평)
건물규모 ≫ 지하 1층, 지상 3층
거주인원 ≫ 4인(부부 + 자녀 2)
건축면적 ≫ 52.98m2(16.03평)
연면적 ≫ 250.42m2(75.75평)
건폐율 ≫ 19.99%
용적률 ≫ 59.55%
주차대수 ≫ 2대
최고높이 ≫ 10.47m
구조 ≫ 기초 - 철근콘크리트 매트기초 / 지상 - 철근콘크리트
단열재 ≫ THK60 열반사단열재
외부마감재 ≫ 외벽 –보랄 치장벽돌 / 지붕 – 무근모르타르
창호재 ≫ 삼남창호
에너지원 ≫ 도시가스
조경 ≫ 에이트리
전기·기계 ≫ 하나기연
구조설계(내진) ≫ 센구조
시공 ≫ 무원건설
설계 ≫ 푸하하하 건축사사무소(한승재, 한양규, 윤한진) + 평입단 건축사사무소(장서경)
감리 ≫ 푸하하하 건축사사무소
1층은 중정과 계단실을 중심으로 주방과 거실이 나뉜다.
가구 업체와 협업하여 옷장, 세탁기, 냉장고, 식탁, 방문 등 집의 모든 가구를 벽 속에 숨길 수 있었다.
공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선 방치된 채로 버려지는 공간이 없도록 해야 한다. 들어가기 싫어지는 곳이 없도록 집의 모든 부분을 쾌적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 집의 지하엔 주차장과 작은 방 그리고 창고가 있다. 지하실과 건물 사이를 분리해서 지하에까지 햇빛과 바람이 통하도록 설계했다. 그리고 지하에 식물을 심어 지하를 1층처럼, 그리고 집 안의 공원처럼 만들었다.
수납실 겸 드레스룸이 되는 복도.계단을 따라 3층으로 오르면 네모 창 너머 초록을 마주한다. 바로 옆 부부 욕실을 배치했다.
네모진 창문 프레임과 직선이 어우러진 풍부한 3층 공간. 복도 끝 공간은 취미실로 활용할 예정이다.
INTERIOR SOURCE
내부마감재≫ 벽 – 석고보드 위 백색 수성페인트 도색 / 바닥 –이건 강마루
욕실 및 주방 타일≫ 윤현상재 수입타일
가구·주방가구≫ 바이빅테이블(설계, 제작, 설치)
계단재·난간≫ 라왕 집성목재 계단재, 두께 5mm 평철 제작 난간
단독주택을 짓는다는 건 큰 결심이다. 보통은 평생 살 건물, 변하지 않는 건물을 상상하며 집을 짓기로 한다. 환경은 바뀌는데 집이 변하지 않으면, 결국 집을 옮기거나 집을 대대적으로 고쳐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환경에 맞춰 변화할 수 있는 집은 오래도록 변하지 않는 집이 될 수 있다.
옥상에서 내려다본 중정의 모습. 창을 통해 모든 방에서 중정을 볼 수 있어 밝은 방, 어두운 방이 따로 없다.
“중정이 시작하는 곳에서 계단이 시작하는데요, 그렇게 한 층의 높이가 정해지고 건물 높이가 정해집니다. 그러면 벽돌이 정확히…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만족시키는 완벽한 네모의 사이즈는…!”
어느 날, 네모에 중독되어 허덕이는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건축주는 내 손을 꼭 붙잡아주었다. 그리고 펜을 쥔 나의 손으로 지하 1층 도면, 주차장 진입로에 커다란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으악, 곡면 아니어도 주차할 수 있잖아요!”
“자, 자, 힘 빼세요.”(곡면의 벽은 차량 진·출입에 용이하다.) <글 : 한승재>
건축가 윤한진, 한양규, 한승재 푸하하하 건축사사무소(FHHH Friends)
푸하하하 건축사사무소는 (사진 속 왼쪽부터)윤한진, 한양규, 한승재 세 명의 대표 건축가와 여덟 명의 동료들이 함께하는 사무소다. 2014년 김해건축문화제 대상, 2016년 서울시 건축상 최우수상 그리고 2017년 한강 여의나루 선착장 공모전과 2019년 새로운 광화문 광장 설계공모에서 입상하였다. 또한 2019년 제주 건축문화제 대상을 수상했으며, 언제나 긍정적이고 성실한 자세로 건축에 임하고 있다.
fhhhs@naver.com│www.fhhhfriends.com
취재_ 조고은 | 사진_ 노경
ⓒ 월간 전원속의 내집 / Vol.270 www.uuj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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