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 전원주택,[작은 집 이야기]작은 집의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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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김 효 만 이로재김효만 건축사사무소
1978년 단국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김수근의 (주)공간종합건축에서 실무를 쌓았으며, 1991년 이로재김효만건축사사무소를 개소하여 현재까지 운영해오고 있다. <임거당> <학익재> <동우밸브공장> 등으로 ’99한국건축문화대상 본상, ’97경기도건축문화상 금상, 3회크리악어워드 올해의 비평건축상 등을 수상하였고 그밖에 <호유재> <상선재> <라이트하우스> <와선재> 등의 대표작이 있으며, 현재 단국대학교와 서울시립대학교의 겸임교수로 출강하고 있으며, 「임거당」 「잘지은집」의 저서가 있다.
전원주택, 작은 집의 아름다움
집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온갖 삶의 행태를 담는 장소이며, 그것은 ‘기능’과 ‘크기’를 가진 방들과 그것들의 동선 즉, ‘연결’로써 구성되는 크기와 볼륨을 가진 공간체이다. 이처럼 주거 건축에서 방의 크기는 그 실의 기능과 사용인원에 의해서 결정되며, 또한 정원의 크기도 마찬가지로 그 가족인원과 용도에 의해 정해진 것이 아니면 그것은 낭비적이며, 허황된 것이고 따라서, 가치 없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집의 크기로 그 소유자의 부의 정도를 가늠해왔으며, 땅값의 급속한 상승은 지속적으로 땅과 집의 면적이 곧 부의 가치인 등식을 당연시 해왔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거기에 문화적 가치의 잣대를 조금만 대어보면, 대부분 크기만한 집들의 ‘공간적 삶의 질’은 너무 무미하여 실망스러운 것임을 또한 매번 확인하지 아니 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인 것이다.
현관을 열면 한눈에 인식되는 썰렁한 집안의 내부는 드라마적 흥미라곤 없는, 단순세포적 구성이며, 큰 것들만이 과도하게 연속적으로 과시되며 나열된 나머지, 큰 것이 가진 다이내믹함과 시원함을 느끼기보다는 그 크기에 압도되어 오히려 위압감을 느낀다.
이것은 큰 것들만의 나열로서 단순 과시적 사고로 지어짐으로써 위압적 권위의 무력만을 발휘하고 있는 것으로, 인간적 친근함을 배제하고 있기 때문에, 정감 없는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일 것이다.
과거 우리의 대궐 같은 전통 사대부가도 그 거주인원에 의하여 그 면적은 크지만, 그 속에는 크고 작은 방들, 마당들이 조화롭게 엮여있는 구성으로서, 이것들의 그 장점을 우리 현대건축이 배워서 발전시켜온 좋은 공간들의 전형이 되어왔다는 것을 여기서 상기하지 아니할 수 없다.
이 큰 사대부가들은 큰 전체를 가지지만, 작은 것이 모인 전체 즉, ‘인간적 척도’에 맞는 성격의 여러 작은 공간들이 모여 하나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포근한 공간으로 느끼는 것일 것이다.
현대사회, 우리시대 핵가족시대의 ‘집’은 더 이상 ‘큰집’이 아닐 것이며 현대사회로부터의 피난처이며 은신처로서의 ‘풍요로운 삶의 집’이 요구되는 것으로 생각되며, 삶이 없는 크기만한 집보다는, 작지만 다양한 삶적 공간의 드라마가 있는 집이 그것일 것이다.
임거당은 일산의 70평 대지에 지어진 4인가족이 거주하는 실내면적 50여평의 도시형 단독주택이었으며, 이 주택의 설계에서 나는 작지만 풍요로운 ‘공간’을 계획하려했다.
그 전략의 첫째는 대지전체를 건물로 보고, 외부공간을 내부공간화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외부정원과 실내와의 외벽을 바닥부터 천정까지의 전면 투명유리로 구획하면 그 투명성으로 인해 실내에서 볼 때, 외부정원도 실내면적의 일부로 확대되어 보이며, 거기에 더하여 외부와 내부를 같은 재료로 마감한다면, 그 동질성으로 인해, 더욱더 외부와 내부의 구분이 모호하게 되어, 그 체감면적은 실제보다 훨씬 더 커 보이는 현상을 적극적 적용하였으며, 그 투명유리를 통하여 보이는 풍경을 ‘회화적’인 것으로 구성하여, 감성이 있는 확장된 공간을 의도했던 것이다.
둘째는, 바로 갈 수 있는 것을 조금 돌아가게 하며, 한눈에 보이는 풍경을 여러 번으로 나누어 보게 한다는 것이다. 돌아가게 하면서 바로 가는 것 보다 조금 더 많은 공간적 체험을 하게 함이며, 하나의 풍경을 여러 컷으로 나누어 연출함으로써 스토리가 있는 드라마적 구성을 경험하게 하여 공간의 풍요로움을 느끼게 하며 이로써, 면적의 크기를 시간적 요소로 확대시킬 수 있는 것이다.
셋째는, ‘마당’ 즉 ‘자연의 장소’를 끌어들이는 것이다. ‘마당’은 ‘자연’으로서, 비가오고 눈이 오며, 꽃이 피고 지며, 바람 부는 등의 하루종일 변화하고, 일년내내 ‘변화’하는 ‘장소’로서의 공간인 것이며 이 ‘살아있는 자연’인 ‘마당’이 항상 보이는 방은 그 마당과 함께 변화하며 같이 살기 때문에 자연과 같은 풍요로움을 소지하게 된다.
이와 같이 이 ‘임거당’은 작지만 많은 공간적 이야기를 갖고 있는, 살아있는 집, 그래서 소박하지만 풍요로운 삶이 있는 집이 되기를 바랬던 것이며, 그렇게 지어졌다.
작은 것은 작아서 포근히 아름답고, 큰 것은 커서 후련한 멋이 있다. 크고 작음은 상대적 가치이며, 그것은 시대적 감각에 따라 다를 수 있는 가치이고, 큰 것은 작은 것과 병치되어 비교 될 때, 그 시원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며, 작은 것이 주는 포근함은 큰 것을 경험한 후에야 비로소 그 작은 멋을 감지할 수 있는 상대적인 감성인 것이며, 큰 것과 작은 것이 모여 같이 서로 조화할 때, 그 아름다움은 발생할 것이다.
‘공간의 크기’보다는 ‘공간의 질’이 중요한 것이며, 권위적, 과시적 삶보다는 인간적이며 소박한 풍요로움이 있는 세상이 가치를 갖는 것이 아닐까.........
작은 것은 항상 ‘응축된 아름다움’의 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작지만 강한’ 힘을 소지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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