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 | 특별기획ㅣ텃밭 가꾸기 part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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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 살면서 과원(果園)이나 남새밭을 가꾸지 않는다면 세상에서 버림받는 일이 될 것이다.” 정약용이 전남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며 두 아들에게 부친 편지의 한 대목이다. 여기서 남새밭은 바로 텃밭을 말한다. 선비의 신분으로 직접 채소를 심고 가꿨던 그는 텃밭을 일굼으로써 얻는 보람과 의의 뿐 아니라 구체적인 재배방법까지 일러두고 있다.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땅에서 얻는 보람도 없다는 진리. 멀리 있는 자녀에게 그 소중함을 전하고자 애쓴 그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원생활을 하면서 변변한 채소밭 하나 가꾸지 못하고 있다면 먼저 자신의 게으름부터 탓해야 할 것이다. 조그만 한 평 짜리 땅과 얼마간의 시간과 땀만 있다면 텃밭가꾸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 흙 한 평 가꾸기
서울은 이제 흙 한 평 밟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콘크리트에다 아스팔트가 온 세상을 뒤덮었으니 말이다. 공원이나 아파트 화단에 가면 흙을 볼 수 있지만 일상적으로 밟고 사는 흙이 아니라 눈으로 보기나 하는 흙일 뿐이다.
한 정신과 의사에 따르면, 나이 60이 넘으면 10살 전후의 추억이 강렬하게 살아난다고 한다. 말년의 인생을 어릴 때의 추억을 되새기며 그 맛으로 살아간다는 것인데, 흙의 추억이 없는 지금의 아이들이 노인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우울증이나 정신병에 걸릴 위험이 높다는 것이 그 의사의 경고다.
도시가 생태적으로 큰 질병에 걸린 것은 순환의 구조가 막혀버린 데 있다. 똥오줌이나 음식 찌꺼기가 거름으로 재활용되지 않는 것이다. 옛말에 자기 똥을 3년 먹지 않으면 큰 병이 든다고 했다. 똥이 삭혀져서 거름이 되고 그것을 먹고 자란 곡식이 다시 내 입으로 들어와야 제대로 생명을 부지할 수 있다는 말이다.
사실 똥이나 오줌만한 거름도 없다. 사람은 먹은 것 중 30% 정도만 흡수한다고 하니 상당한 영양분이 똥오줌으로 배설되는 것이다. 게다가 똥은 음식이 소화되면서 잘게 쪼개지고 따뜻하게 데워진 것이라 발효가 아주 쉬운 재료다. 사람은 일종의 거름제조기인 셈이다. 여하튼 이런 소중한 똥오줌이 거름으로 재생되기는커녕 많은 비용을 들여가며 자연을 더럽히는 오염원으로 전락해버렸으니 그런 도시가 어찌 큰 질병에 걸렸다 하지 않을 수 있을까?
도시를 살리는 것은 순환 구조를 다시 만드는 일인데, 그 핵심이 바로 흙 한 평 가꾸기다. 한 평이란, 수량적 개념의 1평이기보다는 작다는 뜻의 상징이기도 하면서 그것으로 도시를 살린다면 원래 크다는 뜻을 가진 ‘한(漢)’의 의미가 살아난다. 실제로 1천2백만명의 서울 사람들이 한 가구당 흙 한 평씩 가꾼다면 그 뜻은 어마어마하게 클 것이다.
흙 한 평으로 음식물 찌꺼기를 거름으로 재활용하고 똥오줌을 훌륭한 거름으로 재생시켜 순환의 삶을 살려낸다면 그야말로 흙 한 평의 기적으로 도시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베란다에서, 옥상에서, 마당에서, 도시공원 한 복판에서, 그리고 조그만 짜투리 땅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서든지 많은 사람들이 흙 한 평씩만 가꾼다면, 그것의 대기정화 효과나 수질개선 효과는 나무만 심겨져 있는 공원보다 훨씬 뛰어날 것이다.
사실 흙 한 평 농사의 진짜 즐거움은 자신의 똥오줌으로 키운 배추의 그 놀라운 맛을 즐기는 데에 있다. 농약에 의해 죽은 흙은 유기농법으로 해가 갈수록 살아나고 그만큼 곡식의 맛이 질적으로 달라져 해마다 놀라운 맛의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그렇게 키운 배추와 무와 파와 고추와 마늘과 알타리 등등으로 김장을 담가 보자. 겨우내자신이 키우고 담근 김치가 눈앞에 어른 거려 회식과 술자리가 줄고 퇴근 시간이 빨라진다. 얼마나 재미있고 신나는 일인가!
글쓴이 안철환 씨
(사)전국귀농운동본부 출판기획실장. 7년전 출판사에서 일하며 자연학교에 관한 책을 만들던 것이 인연이 되어 농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지금은 경기도 안산에서 4백평의 텃밭을 일구는 한편, 주말농사 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도시 사람을 위한 텃밭 가꾸기와 귀농자를 위한 실습도 돕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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