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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꽃 피는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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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08-03 14:25 조회4,88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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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부안군 석포리, 어느 한갓진 마을. 약 650평 대지에 집을 짓고 정원을 가꾸는 고충석, 신예순 씨 부부가 산다. 8년 전, 두 사람은 황량한 양파밭이었던 이곳에 작은 조립식 주택을 마련하고, 주말마다 들러 땅을 다지고 연못을 만들고 꽃을 심었더랬다. 목조주택을 지어 아주 내려와 매일 사랑으로 정원을 돌보며 산 건 3년 정도다. 자연스럽게 흐르는 둔덕을 따라 사시사철 300여 종 꽃이 피고 지는 장관을 마주하는 삶. 부부 인생의 가장 화려한 시절은 바로 오늘이다.

 

 

흐드러지게 핀 꽃들과 초록 너머로 붉은 벽돌집 한 채가 한가로이 자리한다. 함께한 오랜 세월이 무색하게, 여전히 풋풋하고 다정한 띠동갑 부부는 오직 둘이서 이 집과 정원을 가꾼다. 남편 고충석, 아내 신예순 씨는 타샤의 정원을 꿈꾸며 일군 이곳에, 각자의 성을 따 ‘고신정원’이라 이름 붙였다. 꾸미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정원에 들어서면 어느 동화 속 들판인 듯, 숲속 오솔길인 듯 느껴진다.

전주에서 교직 생활을 했던 두 사람은 8년 전 이 땅을 구입했다. 주말마다 변산반도 드라이브를 즐기며 양가 부모님을 뵙고 가곤 했던, 부부의 고향 동네인 곳이다. 오래전부터 정원을 가꾸는 삶을 꿈꿔왔기에, 땅을 마련하자마자 작은 조립식 주택 한 채를 놓고 시간 날 때마다 와서 머물며 밤낮으로 일했다. 질퍽거리는 토질이라 손수레에 한가득 실은 자갈을 일일이 붓고 토대을 다져 길을 만든 후, 잔디를 깔았다. 마사토 두 트럭을 직접 퍼다 나르며 지금의 자연스러운 정원 지형을 만들어 낸 건 아내 예순 씨다. 먼저 퇴직한 남편이 당시 운영하던 한옥 스테이 ‘교동살래’를 전담했던 터라 어쩔 수 없이 홀로 고생을 감수했다고.

식물 배치 계획 역시 10여 년 전부터 꾸준히 공부하고 플로리스트 자격증을 취득한 그녀가 직접 했다. 그때만 해도 지금 같은 전문 종묘상이 드물었는데, 길 가다 저먼 아이리스를 발견하면 비싼 화분 하나 사서 선물하고 한 포기 얻어오곤 했더랬다. 파종할 줄도 몰랐지만 모종을 사다가 포기나누기로 착실히 늘려나갔다. 남편 충석 씨 덕분에 정원 한가운데 금붕어가 노니는 연못도 탄생했다.

“예쁜 것 중 쉬운 건 하나도 없어요(웃음).”

해가 나오기 시작하면 일하기 힘들다. 집을 지어 완전히 이사 온 후, 부부는 꼭두새벽부터 일과를 시작한다. 고된 농사는 짓지 말자 서로 약속했는데 웬걸, 정원 일이 농사보다 몇 배는 더 힘들다. 그 넓은 잔디 정원과 텃밭의 잡초까지 손으로 뽑고, 특히 병충해에 약한 장미는 맨손으로 진딧물을 일일이 잡기도 한다.

주차장 한편에 산처럼 쌓여있는 비료는 1년씩 묵혀 쓴다. 발효가 안 된 비료는 독해서 오히려 꽃이 상하기 때문. 화학 비료보다는 동물성 비료를 쓰고, 자리를 옮긴 식물이 있으면 뿌리가 충분히 내릴 때까지 거름을 주지 않고 기다려준다. 이토록 정성을 쏟은 정원이건만, 얼마 전 멧돼지 습격 사건으로 거의 사라진 보랏빛 알리움들을 생각하면 그렇게 속상할 수가 없다.

 

 

자상한 남편 충석 씨는 정원의 궂은일을 도맡아주는 든든한 지원군이다.

 

 

 

새로 지은 목조주택의 현관. 담쟁이가 타고 오르는 붉은 벽돌 벽이 고풍스럽다.

 

 

 

고재로 천장을 장식한 본채 거실 및 주방. 빈티지 조명과 가구, 그릇 등은 모두 아내 예순 씨가 수집해왔던 것이다. 

 

 

 

플로리스트 아내, 한국화가 남편이 함께 꾸린 정원에서의 오후. 정원에는 저먼 아이리스를 비롯해 수레국화, 으아리, 화이트핑크셀릭스, 비단동자, 알리움, 딤스로켓 등이 얼굴을 내민다. 

 

 

POINT 고신정원의 사계절

 

 

(왼쪽 위부터)50평 남짓 시작해 어느새 너른 대지를 가득 메운 정원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봄. 튤립, 장미, 아이리스, 작약이 등이 만발하는 눈부신 계절이다. 초록이 싱그러운 여름엔 백합, 수국, 해바라기 등이, 깊어가는 가을엔 구절초, 국화, 단풍나무 등이 차례를 기다려 자태를 뽐낸다. 잠시 쉬어가는 겨울에도 새하얀 설경이 참 예쁘다. 

 

작은 텃밭이 있는 뒷마당은 꽃들의 병원이자 휴식처다. 부실한 아이들은 이곳으로 옮겨 널찍하게 심어두었다가 건강해지면 정원으로 다시 옮겨온다. 꽃을 닮아 그럴까, 인생의 전부가 된 정원 말고 부부가 또 하나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여행’. 마침 고신정원을 찾은 날은 예순 씨가 친구들과 함께 조지아 트빌리시로 떠나기로 한 전날이었다. 아내가 없는 동안 정원을 돌보는 건 남편 몫. 일 년에 몇 번은 꼭 여행을 가는데, 부부가 함께 하는 여행은 보통 정원 휴식기인 겨울에 간다.

 

 

매일 꽃과 대화하며 돌본다는 예순 씨의 일상 

 

 

 

정원에서 집으로 향하는 길, 머지않아 환상적으로 피어날 장미를 기다리는 그녀의 발걸음이 경쾌하다. 

 

 

애정하는 꽃 BEST 3

 

1 - 4~5월 흰색·노란색·자주색 등 다양한 색으로 꽃 피는 구근식물. ‘독일 붓꽃’이라고도 한다. 2 - 200겹의 풍성한 꽃잎과 자극적이지 않고 은은한 향기 덕분에 푹 빠지게 된 영국 장미. 3 - 잎이 실처럼 잘게 갈라진 신비로운 니겔라. 여름에 푸른색, 흰색, 자주색의 꽃이 핀다.

 

 

봄이 한창인 정원은 자연스럽게 난 길을 따라 숲속을 걷는 기분을 선사한다. 

 

이 좋은 풍경을 둘만 보기가 아까워, 부부는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초대하거나 찾는 이가 있으면 별채를 스테이로 내어주기도 한다. 덕분에 손님은 별채에서 하룻밤 사색을 즐기고, 정원이 한눈에 들어오는 본채 거실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향긋한 커피를 마시는 호사를 누린다. 노랑, 보라 등 선명한 색의 아이리스 꽃은 아직인 과도기라 더 멋진 정원을 보여줄 수 없어 아쉽다고 말하는 두 사람. 작약, 영국 장미, 데이릴리, 우단동자… 자신의 때를 알고 기다리는 꽃들 덕분에 고신정원에서의 나날은 설렘의 연속이다.

 

 

 

부부가 정원을 가꾸며 처음 생활하던 조립식 주택은 별채가 되었다. 아늑한 내부는 지금도 아내의 감성과 손길이 가득하다.(위, 아래) 

 


취재협조 _ 고신정원 https://blog.naver.com/sys3008

취재 _ 조고은 사진 _ 변종석

ⓒ 월간 전원속의 내집 / www.uuj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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