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즐길 줄 아는 이들의 '주택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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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밤하늘을 볼 때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노랫말이다. 우주를 마주하는 방대한 꿈을 담은 이 정원에는, 진짜 계수나무 한 그루와 그 아래 쉼터가 자리한다. 지구에 여행 온 기분으로 산다는 정원주는, 이곳을 갤럭시 정원이라 부른다.
계수나무 아래 서서 마주하는 풍광. 하늘과 닿은 원형 정원이 과감하게 펼쳐진다.
꿈꾸던 정원을 위한 완벽한 조건
손희전 씨는 나이 예순을 앞두고 남편에게 통 크게 외쳤다.
“지금껏 아내로, 엄마로 열심히 살았으니, 나의 환갑 선물은 ‘전원생활’로 받겠어요!”
서울 한복판, 33년을 마당 있는 집에서 살아온 그녀는 빽빽한 도시 일상에서도 자연을 놓지 않았다. 사시사철 꽃을 가꾸고 100여 개가 넘는 장독을 닦으며 꿈꿔 온 전원생활. 남편 방형린 씨도 그런 아내의 속내를 알기에 두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부부는 지난 1월, 경기도 용인으로 들어왔다. 땅을 알아보고 집을 짓기엔 시간이 부족해, 풍광 좋은 주택 매물을 알아보다 3시간 만에 계약한 집이다.
원형 잔디 주위로 라벤더와 지피류, 키 큰 블루엔젤을 심었다.
웰컴 정원의 물확에는 법륜사 스님이 나눠주신 꽃 창포를 두었다.
그녀에게 건물은 2순위였다. 단지 가장자리 높은 부지라 전망이 최고였고, 집 앞으로 펼쳐진 마당은 빈 도화지 같았다. 서울집에서 세간을 옮기다가, 마당 한끝에 전주인이 만들어 놓은 토굴까지 발견했다.
“마치 나를 위해 준비된 집이 아닌가 했어요. 다만, 잔디에 소나무가 전부인 정원이라 봄이 되면 다시 꾸밀 계획을 했지요. 겨우내 고민할 시간이 있어, 오히려 행운이었어요.”
Gardener's Tip | 정원은 지금을 즐기며 미래를 담는 것
● 정원은 네모반듯한 땅보다 각지거나 부정형이 좋다
정원에도 집처럼 방을 만든다고 생각하자. 각이 있고 들쑥날쑥한 땅은 다양한 모양의 방을 만 들 수 있다. 건물을 배치할 때 각을 조금 틀어 보는 것도 좋다.
● 좋아하는 나무 한 그루는 꼭 심자
전형적인 회양목이나 철쭉을 준공용으로 심는 것보다 나무 하나, 초화류 하나라도 내 마음에 드는 식물을 심으면 정원에 애착을 가질 수 있다.
● 자신만의 가든 타임을 정해 보자
정원을 놀이터라 생각하고, 정원이 없을 때 해보지 못했던 야외 놀이를 매일 달리 해 본다. 화로대 불놀이, 골프 퍼팅 연습, 아이와의 모래놀이 등이 있다.
● 식물의 죽음에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자
많은 사람들이 식물이 죽을까 봐 두려워한다. 하지만 살아있는 건 언젠가 스러지는 것이 자연의 이치. 그때는 ‘지금까지 즐거움을 줘서 고마웠어’라고 인사하고 애정을 담아 잘 보내주면 된다.
지난여름, 혹독한 더위에 제법 시달렸던 라벤더가 가을까지 남아 제 색을 뽐낸다.
정원 구석에는 텃밭을 갈무리하고 물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외부 수공간을 제작했다. 노출콘크리트 주택에 맞춰 마감재를 택하고, 조명 시설도 빼놓지 않았다.
정형화된 정원의 메이크오버
푸르네 이상현 정원사와 미팅을 시작한 때도 한겨울이었다. 첫 만남에서 ‘우주인을 위한 정원’이라는 어찌 보면 다소 무모한 주제를 내놓은 그녀에게 정원사는 한참만에야 화답을 가져왔다. 우주라는 광활한 콘셉트를 어떻게 정원에 녹여내야 할지 그에게도 시간이 필요했던 것. 그렇게 봄까지 설계 작업이 이어지고, 땅은 6월이 되어서야 맨살을 드러냈다. 소나무 위치를 옮기고 토양을 개량하는 기초 작업들을 마친 후, 본격적인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갔다. 정원의 메인은 두 곳으로, 계수나무 벤치 공간과 주방과 이어진 선룸이다.
(위쪽부터 우측 순으로) 대지에 하는 정원 스케치 / 갤럭시 정원 조성 과정 / 선룸과 바닥 데크 공사 / 2층 테라스에서 내려본 풍경
출입구는 처마 아래 넓고 낮은 데크를 내고 대형 화분으로 연출했다.
이 정원사는 “핵심 공간을 어디에 둘 것인지 먼저 결정하고, 거기서부터 정원을 펼쳐놓는 식”이라며 “산자락 아래는 원형 잔디의 갤럭시 정원으로, 생활과 연계한 곳은 선룸에서 확장된 정원으로 분류했다”고 설명한다. 선룸은 벽체 일부를 철거하고 구조 보강을 한 후, 두 면에 폴딩 도어를 설치해 새로 만들었다.
이를 둘러 넓은 목재 데크를 배치하고 단차로 나눈 정원은 데크목 계단으로 걸음을 안내한다. 방부 처리하지 않은 목재를 사용한 덕분에 주방에서 선룸, 데크에서 잔디마당까지 모두 맨발로 오간다. 바닥의 경계는 있지만, 동선에 전혀 걸림이 없는 자유분방한 정원이다.
정원에 필요한 설치물들은 고목과 주춧돌, 물확 등 전통 소재로 채웠다. 갤럭시 정원의 고목 5개는 장부촉을 그대로 드러내며 서 있고, 주춧돌은 공간의 경계를 채우며 자체로 멋진 작품이 된다.
목재 데크 주변으로 물빠짐이 좋은 흙을 두고 다육식물과 야생화를 심었다.
정원사가 빈터로 남기고 간 웰컴 정원은 건축주의 스타일을 보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 장미는 뻗어 나가는 길을 수형에 맞춰 잡고, 제때 가지치기를 해줘야 하는 손이 많이 가는 식물이다.
키 큰 계수나무와 블루엔젤, 100년 된 주목, 분재처럼 키우는 복숭아나무는 새로 심고, 희전 씨가 22년을 함께 한 소나무도 이사를 왔다. 나무를 심을 때는 집 안의 모든 창에서 식재 지점을 내다보며 위치와 수형을 잡아 나갔다. 잎이 무성할 때와 꽃이 필 때, 겨울의 풍경까지 고려해야 했다.
지난 6월 말, 1차 공사를 마치고 8월이 되어 초화류와 지피류를 심었다. 갤럭시 정원은 라벤더를 주종으로 하고, 고목과 울타리에는 다양한 장미를 넝쿨 지었다. 이 외에도 이웃집 초화를 얻기도 하고 마을길에 떨어진 싸리 씨를 그대로 심기도 했다. 상사화, 작약, 목단도 그렇게 채워졌다. 차와 효소를 만드는 수레국화나 백련초, 음식 재료가 되는 방아잎과 두메부추 등 관상은 물론 쓰임이 있는 식물도 한가득이다.
부부 침실에서 마주하는 창가 풍경. 22년간 키워 온 소나무가 바로 마주한다.
출입구 너머 텃밭. 희전 씨는 물을 자주 주기보다, 내성을 키우며 기르는 것이 좋다고 귀띔한다.
출입구 우측에는 웰컴 정원이 자리한다. 정원사는 이 땅을 구획만 해 두고, 식재를 구성하진 않았다. 건축주가 직접 식물을 선택하고 심고 가꾸는 빈터가 꼭 있어야 한다는 지론 때문이다.
“얼마 전, 남편 사업차 외국 손님들이 방문했어요. 그날의 파티를 기념하며 웰컴 정원에 멋진 장미나무를 심고 각자 이름표를 매달았죠. 다들 얼마나 좋아하던지요.”
정원사의 철학이 부부의 기쁨으로 이어진 예다. 정원에 도통 관심 없던 남편도 어느새 전지가위를 들고 마당으로 나서 아내를 놀라게 했다. 정원사가 선물한 장미 전문서도 들춰보기 시작했다고. 그녀만의 아틀리에는 이제 부부의 놀이터로 변신하는 중이다.
건축주 인터뷰
“나의 하루는 자연에 응답하는 시간”
이 넓은 정원을 혼자 가꾸는 데 힘이 달리지 않나
새벽 4시에 일어나 밤 10시까지 움직인다. 온종일 퐁당퐁당 손과 몸이 바빠도 자연에서 얻은 것들로 요리하고 장독을 채우는 일은 얼마나 큰 잔치인가.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말이 사람 사이에 쓰이지만, 정원이나 텃밭을 보면 진짜 절실하게 느낀다. 나날이 새순을 틔우고 줄기를 뻗치며 열매 맺는 재미가, 바로 새로운 초록 자식 농사다.
정원을 만들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누구에게든 새 이름 붙이는 걸 좋아한다. 정원 작업에 참여한 디자이너들도 다 애칭을 만들어 불렀다. 이성현 정원사에게는 ‘이오’라는 새 이름을 선물했는데, 지금 호로 쓰고 있어 더 기쁘다. 무더위를 견디며 작업에 참여한 모든 이들이 다 감사하다. 나무를 사고 화분을 고르며 식재를 하는 전 과정을 함께 해 줬다.
이 정원이 어떻게 쓰였으면 하나
가끔 남편이 본인 공간 하나 없다고 투정하기도 하지만, 나의 아틀리에라 생각하고 만든 곳이다(하하). 아래 터는 더 가꿔 작은 과수원을 하고, 옥상에는 별을 보며 일할 수 있는 작업 공간도 만들고 싶다. 도예, 퀼트, 염색, 규방 공예까지 평생 만들어 온 것들을 집과 마당에 전시할 수 있는 나만의 갤러리로 꾸미고 싶다.
초보 가드너에게 조언하고픈 말이 있다면
나의 삶의 모토는 ‘지구 100배 즐기기’다. 늘 지구에 놀러 왔다는 생각으로 산다. 뭐든 호기심을 갖고 도전해 보면 좋겠다. 꽃 하나를 애써 피울 때 얻는 기쁨은 정말 말로 설명할 수 없다. 그간 블로그를 운영하며 정원을 가꾸고 텃밭 작물로 요리하는, 2천 개가 넘는 글을 올렸다. 정원에서 얻은 기쁨을 기록하는 것도 내 역사이자, 큰 낙이다.
정원 디자인&시공_ 이성헌 대표 정원사[푸르네]
정원이 일상의 놀이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설립한 ‘푸르네’의 대표 정원사로 가든 디자인과 시공은 물론 정원 문화와 관련된 교육과 행사 프로그램 등을 이끌고 있다. 산림청 정책자문위원(2018~2019)과 ㈔한국원예복지협회 이사, ㈔정원문화포럼 이사, ㈔한국마스터가드너 부회장 직을 맡고 있다. 저서로 『건축가의 정원, 정원사의 건축(2016)』, 『정원사용설명서(2016)』 등이 있다. www.ipurune.com
취재_ 이세정 | 사진_ 변종석
ⓒ 월간 전원속의 내집 / Vol.237 www.uuj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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