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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오는 날, 지붕 위에서 하는 샤워 | ‘지붕의 집’ 이야기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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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194-03 / 전원속의 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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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www.tezuka-arch.com

 

 

나는 설계를 앞두고 건축주를 만나면 그의 취미, 관심사 등 무엇이든 하나라도 더 알아내려고 열심히 이야기를 듣는다.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희망 사항을 끌어내어 건축에 반영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이때 내가 혹시 넘겨짚거나, 건축적으로만 풀이해 가족의 바람과 다른 해답을 내놓을까 늘 경계하게 된다. 이건 일본 건축가인 테즈카 타카하루(手塚貴晴)가 ‘지붕의 집’이라는 주택을 설계할 당시의 에피소드를 접하면서, 두 가지 깨달은 바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칼럼에서는 그중 하나를 이야기하려고 한다.

‘지붕의 집’은 2001년 테즈카 타카하루가 설계한 주택이다. 테즈카는 1964년 도쿄 출신으로, 부인인 테즈카 유이(手塚由比)와 테즈카건축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도쿄도시대학교 교수이기도 하다. 그는 당시 주택 설계를 의뢰한 건축주 A씨를 만나, 으레 하는 질문들을 했다.

“당신에게 재미있는 일이 무엇인가요? 집에서 어떻게 지내는 것을 좋아하시나요?”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상상을 초월했다.

“우리 가족은 지붕 위에서 지내는 것을 좋아합니다. 때론 지붕 위에서 식사도 하고요.”

그러면서 A씨는 테즈카에게 가족 앨범을 내밀었다. 거기에는 어린 두 딸을 포함한 모든 가족들이 지붕 위에서 지내는 일상을 담은 사진들로 가득했다. A씨와 그 부인은 이왕 집을 짓는 김에 지붕 위에서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지붕의 형태는 완만한 경사로 쉽게 결정되었다. A씨 부인은 지붕에 올라가 있을 때도 어느 정도 프라이버시를 보장받길 원했다. 테즈카는 그런 요구 사항들을 들으며 지붕 위에 벽을 세우게 되었고 식사를 위한 식탁과 의자, 요리를 준비하는 부엌도 그려갔다. 이런 식으로 지붕 위에 있어야 할 요소는 계속 늘어만 갔다. 겨울 추위를 대비한 난로, 여름에 땀을 씻어 낼 샤워 시설까지 지붕 위로 올라갔다.


A씨는 원래 지붕 위에서 바비큐 파티도 하고 싶어 했지만, 자칫하면 집 전체를 태워버릴 우려가 있어 그것마저 실현하기는 힘든 일이었다. 테즈카는 “위험하니까 바비큐만은 제발 마당에서 하시죠”라고 설득까지 해야 했다. 결국 지붕 위에서 고기 굽는 건 포기하는 대신, 마당에서 고기를 굽다가 지붕 위에 있는 가족에게 접시를 건넬 수 있도록 집의 처마 끝 높이를 바닥에서 1.9m로 하는 절충안을 내놓았다. 덧붙여 테즈카는 지붕 모서리에 난간을 설치하는 것을 제안했다.
그때 A씨가 되물었다.

“보통 지붕 위에는 난간이 없지 않아요? 저희가 전에 살던 집에도 없었는데요?”

‘지붕의 집’을 아주 특별하게 만든 이유는 난간 및 계단의 유무와 지붕이라는 공간의 상관관계에 있다. 이 집의 지붕에는 난간이 없고, 지붕으로 올라갈 수 있는 외부 계단도 없다. 오로지 집 안 곳곳에서 천창을 통해 지붕으로 올라가는 사다리가 몇 개 있을 뿐이다. 난간이 있었다면, 그건 ‘지붕’이 아니라 ‘옥상’이 되고 말 것이다. 결국 테즈카는 지붕 위에 난간을 만들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리고 난간이 없는 설계도면으로 건축허가를 진행했고, 그 도면으로 수정 없이 건축허가가 떨어졌다.
애당초 A씨와 그 가족이 바라던 것은 쓰임새가 좋고 편안한 ‘옥상에서의 일상’이 아니었다. 그들이 원했던 건 원래 사람이 올라갈 것을 감안하지 않은 채, 집을 짓다 보면 필연적으로 생기는 ‘지붕’이라는 공간에서 행하는 ‘일탈’, 혹은 ‘계획된 비일상(非日常)’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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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택은 일본의 건축 관련 월간지 중 하나인 ‘신건축 주택특집(新建築住宅特集)’에 소개되며 큰 파문을 일으켰다. ‘지붕에서 밥을 먹는다는 건 거짓이다’,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 ‘본인이 지어낸 허구를 마치 건축주가 바랐던 일상인 것처럼 소개하는 건축가는 위선자(偽善者)다’ 등의 비판이 여기저기에서 쏟아져 나왔다. 이 상황에서 건축주 A씨는 월간지에 게재된 어떤 건축가의 평론에 대해 직접 글을 써 반론했다.

“거짓말이 아니다. 우리는 실제로 지붕 위에서 밥을 먹는다.”

이렇듯 건축주가 자기 삶을 알고 그 삶의 모습에 맞춰서 집을 지을 경우, 그 결과물인 집의 모습과 그 쓰임새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 좁은 시각에서 판단하고 비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또 건축가가 본인 아이디어의 한계 속에 건축주의 삶을 가두고 그들에게 족쇄를 채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여기에는 건축 관련 미디어들의 함정도 숨어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거의 모든 건축 관련 매체들은 새롭게 지어진 건축물과 그 과정에서의 의도와 에피소드를 소개하곤 한다. 그러나 최소한 주택을 소개하는 데 있어서 그것들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건축주의 소회다. 본인의 희망 사항에 맞춰서 집을 지었던 건축주가 그 집에 살면서 느꼈던 일상, 쓰임새, 만족감 그리고 후회와 같은 내용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5년 살고 10년 살다 보니 느끼는 일, 그사이에 하게 된 증·개축을 통해 나아진 어떤 것들, 어쩌면 그런 시간을 보낸 집과 건축주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더 클지도 모르겠다. 
이 잡지에 소개되었던 수많은 집들, 그리고 여기에는 소개되지는 않았지만 같은 세월을 지내온 더 수많은 집들 속에서 우리는 숨은 보석 같은 건축주의 이야기를 듣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그 이야기들이 우리로 하여금 더 다양하고, 더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게끔 만들어 줄 것이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태풍이 부는 어느 날, 테즈카는 A씨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로 강한 바람 소리와 함께 A씨가 이렇게 소리 지르고 있었다.

“태풍 바람 속에서 샤워를 하니 기분이 최고로 좋습니다!!!”

“괜찮으세요? 바람이 너무 세서 아이들은 날아가지 않을까요??”

“괜찮아요!!! 저 혼자 샤워를 하고 있으니까. 혹시 몰라 티셔츠도 입고 있어요~!!!”

이렇게 멋지고 행복하게 사는, 건축주들의 이야기를 나는 더 많이 듣고 싶다.

 

 

박성호 aka HIRAYAMA SEIK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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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AH Life_scape Design 대표로 TV CF프로듀서에서 자신의 집을 짓다 설계자가 된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의 단독주택과 한국의 아파트에서 인생의 반반씩을 살았다. 두 나라의 건축 환경을 안과 밖에서 보며, 설계자와 건축주의 양쪽 입장에서 집을 생각하는 문화적 하이브리드 인간이다. 구례 예술인마을 주택 7채, 광주 오포 고급주택 8채 등 현재는 주택 설계에만 전념하고 있다. http://bt6680.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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