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떻게 살고 싶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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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성호 정리 이세정
며칠 전, 한 독자에게 이런 메일을 받았다.
안녕하세요? 기고하신 칼럼을 읽다 우연히 블로그까지 따라 들어와 여러 글들을 보았습니다. 늘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내 집 짓기의 꿈이 그려지는 것 같은 설렘을 얻고 갑니다. (중략) 제가 워낙 모르는 사람이다 보니 질문 하나 드려도 될까요. 내 집 짓기를 앞두고 저는 무엇부터 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요?
1. 예산 확보?
2. 집 지을 부지, 지역 결정하기?
3. 대략적인 구조라도 머릿속에 설계해보기?
4. 아니면 기타?
이 질문에 나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먼저 생각해보세요. ‘어떤 삶이 행복할까?’라는 주제로 가족과 함께 대화하고 고민하면 그 답이 나올 것입니다.
이런 대답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사람들은 각기 다른 생각과 방식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간다. 그래서 각자 선호하거나 실제로 살아가고 있는 라이프스타일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 본인들이 생각하는 ‘행복’이 무엇인지, 그 답만 확실히 알고 있다면 집짓기의 출발은 어렵지 않다.
첫 회 칼럼에서 예비 건축주들에게 어떤 이야기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IMAGINE, 상상하기’란 주제를 선택했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 당신에게 잘 어울리는 것, 당신을 기분 좋게 만드는 것, 그런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당신만의 스타일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도 했었다. 이번 칼럼은 그 연장선에서 하는 이야기다.
과연 ‘좋은 집’의 정의는 무엇이며, ‘좋은 집’을 결정짓는 잣대는 무엇일까? 흔히 말하는 ‘좋은 집’, 사람들의 대화 속에 등장하는 이 대상은 아마도 크고 화려하고 멋진, 소위 으리으리한 집이 아닐까 싶다. 옷에 비유하자면, 우리의 이미지 속 ‘좋은 집’은 아마도 실크로 만들어진 화려한 파티복일 것이다. 그 옷을 입고 있으면 스스로 더 멋있어진 듯 느껴지고, 다른 사람들도 멋지다고 칭찬할 것이다. 화려한 파티복을 입고 한 순간 만족과 기쁨이 넘치지만, 다음 순간 이런 고민에 직면하게 된다. “이 옷을 입고 어디에 가지? 이 옷을 입고 무엇을 하지?” 그렇다. 당신이 화려한 파티복을 입고 자주 사교적인 모임을 즐기는 사람이 아닌 이상 실크로 만든 파티복은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일상생활에서 가장 마음에 들고 자주 입는 옷들, 오래 입어도 싫증이 안 나는 옷과는 다르다. 사람들은 오랜 경험과 본인의 취향, 직업 등을 바탕으로 ‘나에게 어울리는, 마음에 드는 옷’을 계속 찾아 입어 왔다. 그런데 왜 집을 선택할 때는 무조건 ‘좋은 집’만 상상하고 자신에게 맞는 집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까?
심한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본인에게 필요하지 않고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에도 어울리지도 않는 집은 ‘좋은 집’이 아니라 비싸기만 한 ‘무용지물’이다. 그래서 나는 건축주들에게 본인의 행복, 가치관, 라이프스타일을 먼저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권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삶과 앞으로 살아가고 싶은 삶의 모습을 떠올리고 그 삶에 어울리는 것을 중심에 놓고 계획을 세우다 보면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부지는 어디가 좋을지, 어떤 구조의 집이 좋을지, 얼마의 예산의 필요할지, 모두 답이 나온다.
옷 가게에서 마네킹이 입은 옷을 그대로 사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고 한다. 또, 옷을 입어볼 때 판매원이 잘 어울린다고 하면 약간의 의심을 하면서도 그 옷을 사게 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이 현상에는 심리학적 이유가 있다. 사람들은 본인이 관심은 있지만 잘 모른다고 생각하는 분야에서 무언가를 결정하는 데 공포를 갖고 있다. 즉, 모든 경우의 수를 감안하고 선택해야 하는, 소위 말해 ‘책임을 져야 하는 선택’을 무의식적으로 회피하고 싶어 한다. 때문에 이미 마련된 모델이나 전문가의 조언에 기대어 ‘내가 잘못한 판단을 한 것이 아니다’라고 스스로를 변호할 수 있는 구실을 찾는다. 이러한 구매 행동의 무의식적인 심리 작용을 생각하면, 내가 건축주들에게 추천하는 방법론은 너무 부담스럽고 곤혹스러운 제안일지 모른다. 그러나 회피하고 싶은 무의식을 뒤로 하고 ‘내가 생각하고 내가 선택한다’는 의도적인 삶을 실천하다 보면 스스로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기쁨은 무엇보다 크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단독주택에서의 삶을 꿈꾸고, 계획하고 있는 수많은 예비 건축주들은 아마도 ‘보다 나은 방향으로의 변화’에 대한 갈망이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파트라는 삶의 방식을 벗어나 단독주택이라는 삶의 방식을 의도적으로 택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가설이 맞다면 당신의 이미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것이다. 한쪽은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당신에게는 이런 것이 잘 어울릴 거예요”라며 당신의 등을 밀어주는 누군가의 권유를 네비게이션 삼아 따라가는 세계다. 다른 한쪽은 “본인의 책임이니까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선택하세요”라고 하는 세계. 물론 처음에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판단조차 힘들어서 헤맬 수도 있는, 그런 세계로 통하는 문이다.
어느 한쪽을 선택했다고 해서 성공의 확률이 획기적으로 높아지거나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이 선택, 그 자체부터가 당신에게 이렇게 묻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어떻게 살고 싶은가?”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박성호 aka HIRAYAMA SEIKOU
NOAH Life_scape Design 대표로 TV CF프로듀서에서 자신의 집을 짓다 설계자가 된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의 단독주택과 한국의 아파트에서 인생의 반반씩을 살았다. 두 나라의 건축 환경을 안과 밖에서 보며, 설계자와 건축주의 양쪽 입장에서 집을 생각하는 문화적 하이브리드 인간이다. 구례 예술인마을 주택 7채, 광주 오포 고급주택 8채 등 현재는 주택 설계에만 전념하고 있다. http://bt6680.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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