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만드는 남자 ‘베이킹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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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을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빵을 만들게 된 남자. 도심 속 아파트와 빌라를 오가던 그들의 이야기는 한적한 시골 마을 전원주택에서 다시 시작된다.
취재 조고은 사진 변종석
▲ 베이킹은 고된 작업이지만 그래도 작업실에서 빵을 만들 때가 가장 즐겁다.
여기, 오고 가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도심이 아닌 경기도 양평의 가장 끝자락에 베이킹 공방을 연 남자가 있다. 동네 이웃조차 몇 안 되는 이곳에서 용감하게 자신의 첫 베이킹 클래스를 시작한 그는 바로 누적 방문객 930만 명을 자랑하는 베이킹 전문 블로그의 주인공 ‘베이킹파파’다. 상세한 사진은 물론 동영상까지 담은 친절한 베이킹 레시피와 소탈하고 유쾌한 입담으로 온라인에서는 이미 소문이 자자하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온라인 쇼핑몰 창업 같이 쉬운 길을 택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가 아내와 함께 선택한 것은 다름 아닌 ‘시골 전셋집 베이킹 공방’이었다.
▲ 따뜻하고 밝은 거실 ◀ 베이킹파파가 만든 바게트와 식빵들 ▶ 소품 역시 베이킹과 관련된 것들로 가득하다.
꿈도 없고 돈도 없던 시절, 아내가 제안한 베이킹은 오랫동안 방황하던 그에게 뒤늦게 찾은 직업이 됐다. 그전까지는 고정된 직장도 없이 ‘반 백수’로 살았고, 아내가 집안 살림을 도맡으며 가장 역할을 했다. 프리랜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며 남편 용돈도 살뜰히 챙기는 씩씩한 아내였지만, 수입보다 지출이 많으니 살림은 점점 기울었고 급기야 결혼할 때 어머니가 해준 아파트마저 넘어갔다. 계속된 경제적 어려움으로 점점 더 작은 집으로 옮겨야 했지만, 그럴 때마다 아내는 좁은 곳이 더 아늑하다며 웃어 보였다.
그런 아내가 철부지 남편에게 늘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했던 질문이 ‘빵 만드는 일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시큰둥하게 답했던 그는 살았던 곳 중 가장 열악하고 낡은 집, 좁은 방에서의 어느 날, ‘한번 해 보겠다’고 대답했다.
“지나고 나니 아내가 그러더라고요, 그게 마지막 물음이었다고. 이번에도 거절하면 더 이상은 묻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웬일로 제가 순순히 응했던 거죠.”
서른넷, 늦깍이로 시작한 베이킹은 의외로 적성에 맞았다. 사실 처음엔 그저 ‘빵을 좋아하는 아내에게 내가 직접 만든 빵 한번 먹게 해준다’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취미 삼아 학원에 다닌 지 두 달 만에 제과제빵 자격증 시험에 합격했고, 혼자 연습하다 일을 해야 제대로 배울 수 있겠다 싶어 빵집에 취직했다. 거기서 받은 80만원이 결혼 6년 만에 아내의 손에 처음 쥐여 준 월급이었다. 그 후 일반 제과점 서너 군데, 뷔페에 디저트를 대량으로 납품하는 회사에 다니며 6년 정도 꾸준히 일했다. 빵 만드는 일이 즐겁기는 했지만, 새벽 6시 출근에 밤 9시 퇴근이 기본인데다 끊임없는 노동에도 제대로 된 대가를 받지 못할 때면 지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마음을 달래준 것이 바로 그가 운영하는 블로그였다. 휴일에는 직접 만들었던 빵의 베이킹 과정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촬영해 올리고, 같은 공감대를 가진 이들과 정보를 공유하거나 소소한 이야기를 나눴다. 사람들에게 더 맛있는 빵을 만들 레시피와 유용한 팁을 알려주기 위해 공부하고 연구했고, 아내는 그런 그가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방법을 찾아낼 수 있도록 항상 곁에서 버팀목이 되어줬다.
◀ 블로그 이웃으로부터 선물 받은 그림 ▲▼ 베이킹파파가 만든 빵과 쿠키들
베이킹을 시작한 지 6년 만에 직장을 그만두기로 한 건, 가혹한 업무에 더는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무리가 온 팔꿈치와 어깨 때문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건 작은 빵집을 내고 싶었지만 가지고 있는 돈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이때 아내가 살림집과 겸한 공방을 운영해볼 것을 넌지시 제안했다.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과 두려움도 잠시, 블로그를 통해 자신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에게도, 스스로에게도 더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처음엔 이렇게 큰 전원주택에서 공방을 할 생각도 없었고 능력도 없었어요. 허름한 농가주택이라도 얻어서 일을 시작할까 했는데, 이 집의 주인 ‘김준찬 사장님’을 만나고 일이 많이 풀렸죠.”
작은 빌라나 아파트를 얻어 볼까 생각도 했지만 시끄럽게 돌아가는 기계 소음이 문제였다. 결국 도시와는 조금 떨어진 집을 알아봤는데, 눈에 차는 집을 구하려니 돈이 모자라고 예산에 맞는 집은 너무나도 볼품없었다. 맥이 풀리던 차, 인터넷 사이트에서 비교적 저렴한 전세금으로 나온 전원주택을 보게 됐고 두 사람은 집을 직접 보기 위해 한달음에 달려갔다. 넓은 마당과 두 개의 다락방이 있는 아늑한 집은 부부 마음에 쏙 들었다. 빚은 내지 말자고 약속했던 두 사람이었지만 조금 모자라는 돈은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마침내 집을 계약했다.
작년 6월, 드디어 이사를 마치고 거실 빽빽이 공방 수업을 위한 작업대와 베이킹 기구들을 들여놓았다. 발 디딜 틈도 없는 거실을 본 사장님은 이래서 사람이 살 수 있겠냐며 먼저 작업실 증축 공사를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미국에서 35년 동안 집을 지은 경력으로 이 집 역시 손수 지은 사장님의 고마운 제안이었다. 경제적으로 그럴 여력이 없다는 얘기에도 재료비만 대고 그가 조수를 하면 공사를 직접 맡아주겠다고 했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됐다. 생전 처음 해보는 일이었지만 나무로 뼈대를 올려 벽체를 세우고 지붕을 얹는 과정은 베이킹과는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증축 공사 때문에 공방 오픈 일정이 늦어져, 장대비가 쏟아지는 장마철에도 비를 맞으며 지난여름 내내 작업에 집중했다.
“마음이 급해서 매일 밤늦게까지 사장님을 끌고 다녔어요. 저보고 ‘악마 같은 놈’이라고 하셨죠(웃음). 그래도 매일 아침 같은 시간 집 앞에 오셔서 막걸리 한 잔으로 작업을 시작하곤 했는데, 세입자에게 이렇게까지 해주는 집주인은 또 없을 거예요.”
공사가 끝난 후 집의 뒤편에는 10명이 들어가도 넉넉한 크기의 작업실이 생겼다. 그가 만든 빵을 맛본 사장님은 마당 한쪽에 돌가마도 만들어주었다. 덕분에 작년 9월 무사히 공방을 오픈했고 블로그에서 친목을 다진 ‘베이킹당’ 사람들과 함께 정모도 가졌다. 베이킹 선배들도, 작업실을 만들어준 사장님도 이 먼 곳까지 누가 베이킹을 배우러 오겠냐고들 했지만, 문을 연 지 석 달간 방문자만 700명을 넘어섰고 개설하는 수업은 연일 마감이다. 그 바쁜 와중에도 아내가 사진과 동영상 촬영, 프로그래밍을 맡고 틈틈이 공부한 영어로 그가 직접 글을 써 제작한 애플리케이션 ‘all that baking’을 출시하기도 했다.
이제 그는 8주 동안 창업을 희망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정규반 수업에 들어간다. 매번 새로운 빵을 만들고 연구하여 커리큘럼을 짜기 때문에 공부할 양도 방대하고, 매사에 완벽을 기하는 꼼꼼한 성격의 아내와 부딪힐 일도 잦아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도 자신을 믿고 지지해주는 아내와 블로그를 찾아주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더 노력하지 않을 수 없다. “블로그에서 저를 좋아해 주시던 분들이 실제로 와서 수업을 듣고 실망하게 될까 봐, 그게 가장 두려워요. 더구나 이번 수업에는 부산에서 오시는 분이 세 분이나 되거든요.”
▲ 곧 마당에 초록 잔디가 돋아날 공방 전경 ◀ 거실 창가에서 아내와 보내는 오후 ▶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준 사장님과 함께
얼마 전 그는 유정란으로 베이킹을 해보자는 야심 찬 계획으로 닭장을 만들어 병아리를 키우기 시작했다. 날이 풀리면 겨우내 방치해두었던 마당도 손질해 수강생들과 야외에서의 바비큐도 즐길 생각이다. 또, 늘 속만 썩였던 아내의 얼굴에 더 환한 미소가 번질 수 있도록 일등 남편이 될 예정이기도 하다. 막막하고 어두웠던 지난 삶들이, 여기서 이렇게 하나둘 씻겨 내려간다. 더 행복하게 빵을 굽고 사람들과 따뜻하게 부대끼며 언젠가는 꼭 ‘베이킹파파’라는 이름을 건 브랜드를 만드는 것. 두 사람은 오늘도 오랫동안 품어왔던 꿈을 향해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일신리 217-29 031-772-3301 www.bakingpap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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