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이천 목공소 ‘가구장이 박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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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욕심 부리지 않고 소박함 속에서 행복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2005년 5월 ‘전원에 산다’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박홍구 씨네 가족. 세월이 한참 지난 후 다시 찾은 그곳에는 집 안 구석구석 그들의 지난 이야기가 빼곡히 담겨 있었다.
취재 조고은 사진 변종석
▲ 근 10년 동안 차근차근 변해온 집은 지금도 홍구 씨네 가족의 손길로 조금씩 다듬어진다.
“여긴 매일 변해요. 오시는 손님들이 들릴 때마다 ‘어, 또 바뀌었네?’ 하시더라고요.”
이곳 경기도 이천에서 박홍구 씨네 가족을 처음 만났던 것은 2005년의 어느 봄. 이사한 지 6개월 남짓했던 그때는 집과 작업실을 가족의 손길로 새로 단장할 즈음이었다. 박홍구 씨의 아내 하경희 씨 말처럼 10년 가까이 느리게, 조금씩 변해온 집과 작업실. 그들의 집에는 구석구석 세월의 흔적이 묻어난다. 문틀 하나에도, 흙벽돌 한 장에도 그들이 살아온 이야기가 스며 있다. 그 작은 변화들이 모여 지금은 그때와는 또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그래도 특유의 손때 묻은 편안함과 아늑함은 그대로다.
▲ 이제는 정리된 마당 안에 황토 옷을 입은 집과 축사를 개조한 가구전시장이 한가롭게 자리잡아 지난 세월을 실감케 한다.
▲ 처음 이사 왔을 때 낡은 농가의 모습 그대로였던 박홍구 씨네 집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바로 홍구 씨네 가족이 생활하는 ‘집’이다. 8년 전만 해도 집은 낡고 평범한 농가 한 채에 불과했다. 지은 지 50년이 다 되어 불편한 점이 많았지만, 부부는 새로 짓지 않고 살면서 조금씩 손보기로 했다. 그래서 이 집은 마을에서 마지막 남은 흙벽돌집이 됐다.
“집을 한 번에 싹 고쳐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상황에 맞춰 조금씩 손보곤 했죠. 이제야 전체적으로 조금 자리를 잡은 것 같아요.” 집을 고치는데 10년 가까이 걸린 셈이다. 멀리 여행 한 번 안 가고 지낸 동안 집은 꽤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걸터앉아 쉴 수 있도록 원목 마루를 깔고, 벽에는 황토를 칠했다. 방에 문도 내고 창틀도 새로 달아 이제는 새집 같아졌다. 주방은 꾸미고 보니 낡은 수도관 때문에 물이 새어나와, 홍구 씨가 직접 배관을 해 아이 방과 위치를 바꿨다. 그래서 주방 천장에 바른 벽지에는 파란 하늘에 구름이 떠 있고, 처음 해본 배관은 화장실 벽 위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마당에는 기왓장을 쌓아 담을 만들고, 논이 있던 자리에 흙을 부어 땅을 돋운 후 창고를 지었다.
“아들 순신이도 많이 컸죠. 잡지에 나갔을 때가 다섯 살이었는데 지금은 열세 살이니까. 처음엔 이 나무도 요만했었는데.”
다섯 살 꼬마가 사춘기 소년이 된 세월만큼 앞마당의 나무도 훌쩍 자랐다. 경기도 이천으로 막 이사했을 때였다. 천둥, 번개에 태풍이 불던 날, 혹시 나무가 쓰러지거나 뿌리가 뽑힐까 봐 세 식구가 함께 부둥켜안고 버텼더랬다. 그 일로 조금 기울어져 자란 이 나무는 이제 평상에 앉아 쉴 수 있도록 시원한 그늘을 드리운다. 오랜 시간 천천히 그들의 손을 거친 집에는 흙벽돌 사이, 직접 심고 가꾼 나무 한 그루마다 여유와 온기가 깃들어 있다.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 포근하면서도 한가로운 공기의 흐름이 몸을 감싸는 이유가 그 때문일까.
◀ 손님을 반기는 대문 앞 우체통 ▶ 가족의 화목한 모습
▲ 작업실을 확장하여 만든 전시장
▲ 나무로 직접 만든 싱크대와 식탁이 있는 주방
“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은 작업장이에요. 마루가 깔린 작업장을 갖는 게 꿈이었거든요. 종종 마룻바닥에서 맨발로 활보하며 작업하기도 해요.”
그동안 홍구 씨의 작업장도 많이 변했다. 소를 키우던 축사를 개조한 이곳은 원래 하나의 공간으로 넓게 뚫려 있었다. 지금은 벽을 세워 공간을 나누고, 한쪽엔 공간을 새로 확장해 삼면의 창으로 볕이 잘 들어오는 전시장을 꾸몄다.
목수에게는 움직이는 동선이 중요하다. 평소 생활하며 하는 생각과 감정이 가구에 그대로 반영되기 때문이다. 작업 공간이 변해 온 사이, 그의 가구도 조금 달라졌다. 다른 사람은 흉내 낼 수 없는 그만의 감성이 담겨 있다. 이천에 오기 전부터 해오던 목공 DIY 수업도 이제는 하지 않는다. 하루에도 몇 번씩 머릿속에 떠오르는 디자인을 스케치하는 일과 샘플 작업만 해도 벅차기 때문이다.
“남편이 만든 의자는 가만히 보고 있으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해요. 사실 처음 4~5년 동안은 감성의자를 보고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어요. 저 사람 안에 뭐가 있는지 나도 모르는 거지. 그런데 어느 순간 가슴이 찡하더라고요. 남편이 의자를 만들던 순간 어떤 심정이었을지 최근에야 알게 됐어요.”
경희 씨는 그런 남편과 가구의 변화를 곁에서 쭉 지켜봤다. 예전에는 주문을 받아 제작해주는 방식으로 가구를 만들었다면, 지금 남편의 작업은 작품 활동에 가깝다. 내면적으로 외롭고 힘들던 시절 만든 ‘감성의자’는 각종 박람회에서 인정받고 국내외 유명작가들의 미술품을 경매하는 서울옥션에도 등록되며 이제 그의 대표작이 됐다.
“제 심성이기도 한 것 같아요.
흘러가는 대로 자연스럽게 살고, 또 나무도 그렇게 두는 것이.”
▲ 처마 밑에는 황토로 염색한 천을 달아 햇볕을 가리고, 창틀에는 화사한 색감의 꽃 그림을 그려넣었다.
▲ 아들 순신이와 박홍구, 하경희 씨 부부의 단란한 오후
◀ 자귀로 나무를 다듬는 박홍구 씨 ▶ 왼쪽에서부터 감성의자가 변해온 과정이 전시되어 있다.
“이곳에 와서 목수로서의 정체성과 삶에 대한 가치관이 명확해졌어요. 나이가 아주 많이 든 제가 아담한 방에 앉아 의자를 포근하게 안아 쥐고 자귀질을 하는 모습을 늘 상상해요. 죽을 때까지 온전히 손으로, 자귀로만 감성의자를 만들며 살 겁니다.”
그의 가구는 칠을 진하게 하거나 지나치게 가공하지 않는다. 나무 본연의 색과 결이 그대로 살아있어 투박하면서도 깨끗하다. 종종 나무가 갈라지기도 하는데 억지로 메우지 않는다. 구멍을 뚫어 더 이상 갈라지지 않게만 해주는 정도다. 그는 이런 가구를 만드는 이유가 사람들에게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여유를 주고 삶의 속도를 늦춰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디자인이 얼마나 근사한지는 부차적인 문제다. 그래서 그의 가구는 더욱 감성적일 수밖에 없다.
작업실 밖에 나무 침대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계절의 변화에 그대로 노출되어 색이 어둡게 바랜 나무가 오히려 멋스럽다. 박홍구 씨네 가족도 그렇게 따사로운 햇볕도 쬐고 비도 맞으며 억지 부리지 않고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보며, 그들의 집과 가구를 보며 더러는 생각에 잠길 것이다. 한결 가볍고 편안한 표정으로.
가구장이 박홍구 031-642-4511 www.jj2.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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