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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그날 그곳에서 일어났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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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184-02 / 전원속의 내집

1977년 뉴욕 맨해튼에 CITICORP CENTER라는 59층짜리  빌딩이 완성되었다. 이 건물은 세계에서 7번째로 높은 건물이기도 하지만 다른 이유로 더 유명했다. 건물의 하부 9개 층 높이가  필로티 구조로 되어 있고 4개의 굵은 기둥이 59층이나 되는  고층빌딩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건물을 지탱하는  기둥은 네 모퉁이에 만드는 것이 상식이지만 이 건물은 각 벽면의 중앙 부분에 한 개씩, 총 4개의 기둥이 위치하고 있다.  원래 이 곳은 세인트피터스 교회가 소유한 땅이었다. 

 

“같은 곳에 새로운 교회를 지어준다면 빌딩 건축에 동의한다”는  것이 교회 측에서 낸 조건이었다. 땅의 한 모퉁이에는 교회를  다시 지어야 했기에 각 벽면의 가운데에 기둥을 배치할 수밖에  없었다. 이 독특한 구조 디자인을 고안한 이는 프로젝트의 총괄  구조 엔지니어였던 William LeMessurier라는 사람이었다. 

그는 기둥 배치로 인해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8개 층마다 V자 형의 골격을 갖는 특수한 구조  방식을 채용했다. 그런데 고층 빌딩임에도 불구하고 이 구조는  건물 무게가 이상할 만치 가벼워져, 바람이 불면 건물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단점이 있다. 

그는 건물의 경사지붕에 동조질량(同調質量) 댐퍼, 즉 무게 400톤의 추를 띄운 기름탱크를 설치하고 건물이 흔들림과 반대방향으로 추가 움직여서 바람의 힘을 상쇄, 전체 밸런스를 늘 유지할 수  있도록 한 묘책을 내놓았다. 당시 너무나 독창적인 구조와 문제  해결 방법에 사람들은 큰 찬사를 보냈다.  

건물이 완공된 이듬해인 1978년 6월, LeMessurier의 직원이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되면서 이 기구한 이야기는 시작된다.  프린스턴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한다는 그 여학생은 수화기  너머에서 이렇게 말했다.

"CITICORP CENTER는 강풍이 불면 무너질 것 같은데요."

그녀는 졸업논문을 위해 CITICORP CENTER에 대해서 연구하는 과정에서 이 건물이 구조적으로 사풍(斜風, 건물 네 모퉁이가 45° 각도로 비스듬히 맞는 바람)에 취약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설마 그런 일이? 전문가가 만든 건물인데…”라고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를 건 것이다. 보통의 건물들은 모퉁이 부분이 구조적으로 가장 강하며 벽을  향해 90° 각도로 부는 수직풍(垂直風)이 건물에 가장 큰 부하를  주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건물은 특이한 구조 때문에 이 상식이  통용되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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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ICORP CENTER 형태와  실제 모습(www.wikipediaorg)

LeMessurier도 물론 수직풍에 대해서 충분히 고려했었고  건축허가를 받는데 필요한 구조강도도 당연히 계산했다. 그러나 사풍은 완전히 맹점이었다. 그는 직원으로부터 전화 내용을 전해 듣고 부랴부랴 사풍이 건물에 미치는 영향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학생이 지적한 그대로였다. CITICORP CENTER가 견딜 수 있는 사풍의 최대 풍속을  산출해서 뉴욕의 기상 데이터와 대조한 결과, 건물을 무너뜨릴  수준의 강풍을 동반한 허리케인이 55년에 1번 꼴로 뉴욕을  찾아온다는 사실을 먼저 알아냈다.

그것이 올해가 될지,  5년 후가 될지, 아니면 30년 후가 될지 알 수 없지만,  55년 이내 대형 허리케인으로 반드시 무너져 버릴 수밖에 없는 흉기를 맨해튼 한 가운데 만들어 버린 것이다. 물론, 이 결과는 어디까지나 그가 생각해 낸 동조질량 댐퍼가 제대로 작동했을 때의 이야기다. 어쩌면 허리케인의 상륙으로 정전(停電)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런 경우 동조질량 댐퍼는 바람의 힘을  상쇄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건물을 더욱 더  심하게 흔들리게 만든다. 이 경우를 가정해서 계산해 보니 CITICORP CENTER를 붕괴시킬 만한 대형 허리케인은 16년에 한 번씩 뉴욕을 찾아 온다는 더욱 절망적인 답이 나왔다.  

LeMessurier는 당시 ‘이 위험을 알고 있는 사람은 지구 상에  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강하게 느꼈다고 한다.  과학이나 엔지니어링의 영역에서는 특정 전문가만이 남들이  모르는 새로운 사실이나 가능성을 알아낼 수 있다. 그 순간,  그 사람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그 엔지니어의 행동에 따라서 그 후의 결과, 사회, 혹은 환경에 주는 영향은 나비 효과처럼  크게 달라지게 된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그 가능성을 알았을 때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도 했다”고 회상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본인의 명성에 금이 가고 막대한 경제적인 손실을 입을 걱정을 하는 대신, 오로지 “나의 실수로 인해서 생긴 이 위기를 어떻게 하면 막을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자신의 아이가 물에 빠졌을 때, 모든 부모의 행동은 명백합니다. 즉시 물 속에 뛰어들어서 죽을 힘을 다해서 아이를 구하려고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건물에 대한 저의 마음도 같았습니다. (중략) 거기에는  윤리적인 관심에서 검토할 여유조차 없었습니다. 공공(Public)에게 위험이 가해질 가능성이 있는 물건을 만들어 버린 경우, 전문가(Professional)로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답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엔지니어는 LeMessurier가 그랬던 것처럼  공공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하며, 스스로가 입게 될  불이익을 계산하지 않고 즉각적으로 본인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을 선택해야 맞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행동한다는 결심만큼이나 최선의 결과를 얻기 위해서  ‘스스로의 행동을 설계한다’는 노력도 중요하다. 

그는 CITICORP CENTER의 위험을 미연에 해결하기 위해  발 빠르게 행동을 시작했다. 7월 31일, 고문 변호사와 본인이  가입한 보험회사에 협력을 요청하고 다음날에는 건물의  소유주인 CITICORP의 부사장에게 우선 상황을 설명했고  바로 다음날에는 CITICORP의 CEO와 면담을 하는 자리에서  보강 수리에 대한 전적인 협력을 약속 받았다.  행동을 시작한 지 단 나흘 만인 8월 3일, 그는 보강 공사를 맡은
업체와 공사 계획에 관한 협의를 하고 있었다.  

이렇게 건물의 구조 보강 공사를 시작하면서 동시에 위험을  막기 위해 수많은 대책을 강구해 나갔다. 허리케인에  의한 정전 사태가 발생할 때를 대비해 동조질량 댐퍼의 보조  전원을 확보했다.

시와 경찰의 협조를 받아 주변 10개 블록의 긴급탈출 및 피난 대책을 준비했고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적십자의 자원 봉사자 2,500명을 상시 대기시켰다. 그리고 기상정보 서비스를 제공하는 3개 회사에 위탁하여 24시간 365일  쉬지 않고 폭풍우에 대한 정보를 감시하기도 했다. 

보강 공사 현장에서는 건물에 입주해 있는 사람들이 불안해  하지 않도록 그들이 퇴근한 다음 매일 밤샘으로 용접작업을  진행하고 일출과 함께 작업을 중단, 출근 시간 전에는 완전히  철수하기를 반복했다. 이러한 와중에 9월 1일에는 허리케인이 뉴욕 앞바다까지 접근했지만 상륙하지는 않아서 다행히  대참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 해 여름이 끝나가는 9월 중순, CITICORP CENTER의 구조  보강 공사는 완료되었다. 공사에 들어간 정확한 비용은 공개된 바 없지만 최소 400만 달러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보강 공사의 대금을 최종적으로 결재해야 하는 건물  소유주 CITI CORP는 LeMessurier가 가입하고 있던 보험의 지급  상한 액인 200만 달러만을 받고 더 이상의 비용 보상을  요구하지 않았다. 보험회사 역시 그가 위험을 미리 알아내고  필요한 처치를 함으로써 보험 역사상 최악의 손해를  방지했다는 이유로 사건 이후 그가 납입해야 할 월 보험료를  오히려 인하했다고 한다.  

엔지니어로서 ‘공공의 안전, 건강, 복지’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훌륭한 의사 결정을 내린 그는 이렇게 말한다.  “엔지니어나 의사 등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기본 원칙은 오로지 하나입니다.  ‘남을 위협에 빠뜨리지 말 것’”  

이 사건은 그 후 17년 동안, 당시의 관계자 외는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어떤 기자가 파티에서 이 일화를 전해 듣고 LeMessurier 본인에게 확인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1995년  ‘뉴요커’지에 특종 기사로 소개되면서 이렇게 세인들이 아는 이야기가 되었다.  세상은 CITICORP CENTER의 이야기를 하면서 늘 LeMessurier라는 인물의 훌륭한 판단과 행동에게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당시 21살이었던 프린스턴  대학교의 학생 Diane Hartley, 그녀가 전화를 하지 않았다면?  그녀의 전화를 받은 부하직원이 ‘일개 대학생이 무엇을  알겠어?’라고 통화 내용을 상사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면?


LeMessurier가 스스로의 업적에 자만심을 갖고 재검증을 하지 않았거나 그 사실을 숨기기에 급급했다면?  보험회사 직원이나 변호사가 고객의 이익을 보호한답시고 LeMessurier에게 사실을 은폐하자고 권유했다면?  CITICORP의 임원들이 보강 공사를 하는 대신 비밀리에  자산매각을 결정했다면?  세상은 전혀 다른,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 사는 모든 이가, 각자의 자리에서, 이 일화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옳은 판단과 행동을 할  수 있게 될 날을 간곡히 소망해 본다. 그리고 지금 너무나 큰  아픔 앞에서 허탈함을 느끼고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수많은  이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그날 무심코 걸었던 한 통의 전화로,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의 수많은 목숨을 구했던 Diane Hartley처럼 본인의 양심에 충실한 행동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그날 구하지 못했던 우리의 친구들을 위한  진정한 레퀴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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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박성호  aka HIRAYAMA SEIKOU 

NOAH Life_scape Design 대표로 TV CF프로듀서에서 자신의 집을 짓다 설계자가 된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의 단독주택과 한국의 아파트에서 인생의 반반씩을 살았다. 두 나라의 건축 환경을 안과 밖에서 보며, 설계자와 건축주의 양쪽 입장에서 집을 생각하는 문화적 하이브리드 인간이다. 구례 예술인마을 주택 7채, 광주 오포 고급주택 8채 등 현재는 주택 설계에만 전념하고 있다. http://bt6680.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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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mono81님의 댓글

mono81 작성일

구조 설계를 업으로 하는 현 시점에서 이렇게 마음에 와닿는 글은 처음 보는 듯 합니다. 매번 이런 생각을 합니다. '설계를 위한 하중은 언제나 Factor가 있다. 그런데도 안전율로 있지 않느냐. 설계 검토 누락이나 규정 위반은 때로는 wave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악마의 속삭임 같은 내면의 비윤리적 생각 말이다. LeMessurier가 말한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는 부모의 마음은 엔지니어라면 평생 갖고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