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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이 아름다운 집을 짓는 SIE 정수진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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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속의 내집 2015년 3월

과감한 매스에 선이 두드러진 디자인, 여성 건축가의 설계라고는 쉽게 짐작키 어려운 작품들을 선보이는 정수진 소장. 하지만 그 면면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디자인과 시공부터 마감에 이르기까지, 전체와 부분을 어우르는 섬세한 손길이 안팎에서 느껴진다.  

 

취재 정사은   사진 김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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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눈빛으로 교감하며 진솔한 대화를 이어가는 정수진 소장


판교에서 소장님 모르면 간첩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판교에만 6채를 지었으니 그런 말도 들어보네요. 운이 좋게도 개소 후 첫 주택 작업에 좋은 건축주를 만났어요. 그때 지은 ‘하늘집’으로 동네에서 좀 알려지면서 의뢰가 들어왔어요.

주택 설계에 원래 관심이 많았나요
공부할 때부터 꼭 해보고 싶었던 게 주택이었어요. 그러고 보면 지금도 큰 프로젝트를 하고 싶다거나 유명한 건축가가 되고 싶은 욕심보다는 재미있는 작업들이 끊이지 않고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커요.

특별히 주택이 흥미로운 이유라도 있나요
건축은 건축주들의 이야기에 제 머릿속에 그려진 생각들을 접목해 가는 과정이에요. 특히 주택에는 건축주의 일상에 관한 진솔한 이야깃거리가 많아요. 사람이 자기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곳이 집이잖아요. 다른 공간에서는 다소 불편한 부분이 있어도 인식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지만, 집에서는 그게 하나부터 열까지 다 거슬리거든요. 건축가로서는 아주 디테일한 것까지 고려해야 하니 쉽지 않은 작업이죠. 그래서 저는 주택을 잘 다루는 건축가는 직업적으로도 완성도가 높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10여 채의 주택을 설계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주택에서 제일 중요한 건 ‘가족들의 생활을 어떻게 디자인하느냐’, 그리고 건축적으로는 ‘자연과 집이 어떻게 관계를 맺느냐’인 것 같아요. 우리는 대부분 아파트에 살았잖아요. 아파트는 분명 주택보다 살기 편리해요. 그렇지만 건물로 들어가는 순간 외부와는 단절되죠.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나와는 별 상관없는 밖의 이야기예요. 주택은 그런 자연을 단도리를 해야 하는 다소 불편한 수단이지만, 대신에 자연을 맘껏 누릴 수 있는 삶의 방식을 선물하죠.

주택에서 자연과 관계 맺는 방식은 주로 어떻게 풀어내나요
흔히들 현관은 지면보다 어느 정도 높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거실과 데크 사이에는 단차를 줘야 한다고 생각하죠. 그게 비록 한 단차지만, 사람에게는 ‘경계’의 느낌을 주거든요. 저는 그런 경계를 없애려 노력해요. 창문에 기대앉아 손만 내밀면 바닥에 떨어지는 비를 만질 수 있는 것, 날씨 좋은 여름 날 문만 열면 데크가 거실처럼 느껴지게 하는 것처럼 필요할 때 필요한 곳에서 경계를 구분 짓지 않으려고 해요.

그런 장치들을 건축주가 쉬이 수긍하나요
물론 싫어하는 분도 계셨어요. 그럴 때는 ‘딱 두 달만 살아 보세요’라고 설득해요. 주택을 의뢰할 때 과도한 기대감으로 현실적인 문제를 간과하는 건축주들을 만나는 경우가 가끔 있어요. 건축가는 건축주들의 그런 부분들을 조정해나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한번은 마당에 나무를 많이 심자는, 아주 바쁘게 생활하는 건축주를 힘들게 설득해 나무보다는 데크를 더 많이 만들어 드렸는데, 얼마 후 잡초 관리가 힘들어 주차장에 있는 잔디마저 돌로 바꾼 에피소드가 있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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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사무실에는 각종 타일과 마감재 샘플이 가득하다. 재료는 늘 직접 보고 손으로 만지며 고른다.


그동안의 작업으로 ‘중정형 건축가’로 불리기도 하는데요
판교 단독주택지에 지은 주택 모두가 중정형이었어요. 필지들이 인접한 택지지구이다 보니 서로 마주 보고 있으면 프라이버시 침해가 불가피했거든요. 그래서 독립성을 확보하면서도 자연과 편하게 접하는 방식으로 택한 게 ‘중정’이에요. 중정은 외부로 난 창들을 최소화하면서도 내부 마당을 이용해 실내가 외부와 만나기 쉽게 하죠. 그래서인지 판교에 건축주들이 처음에는 “외관에도 창이 크고 많았으면 좋겠어요”라고 하시다가, 살아보면 “이렇게 하길 정말 잘했다!”는 말을 종종 하세요.

그 모양이 비슷해 보인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혹자는 ‘늘 비슷한 유형의 주택을 복제한다’는 비난도 하는데, 주택에서 그런 건 불가능해요. 건축주의 입장에서는 아파트처럼 기성복이 아닌 맞춤복을 입으려 건축가를 찾았으니 그들을 잘 표현하는 유일한 집을 설계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고, 제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같은 거 다시 하면 재미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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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 바닷가에 자리한 ‘펼친 집’ 사진 남궁선

 

중정을 만들 때 디자인 원칙 같은 게 있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중정의 크기에요. 땅의 넓이와 건물 규모에 관한 비례가 적절하지 않으면 집이 아니라 감옥이 돼요. 특히 비싼 도심의 단독주택지는 땅은 좁고 필요한 집의 면적은 크니 건물이 커지고 높아질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일정 비율 이상 안마당을 확보할 수 없다면 중정형은 포기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요.

바깥으로 창이 없어 다소 막힌 느낌도 드는데요
외관에 창을 절제하는 것은 덩어리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제 건축 어법이에요. 그걸 깨지 않기 위해 가능한 모노톤의 재료를 쓰는 거고요. 하지만 창이 늘 덩어리를 깨는 위해요소는 아닙니다. 상황에 맞게 디자인하는 것뿐이예요.
사실 판교의 단독주택 설계 지침을 보면 건폐율, 용적률 말고도 담장이나 대문 등 여러 가지 규제가 있어요. 커뮤니티 활성화를 위해서 그런 지침이 있는 거라고 짐작하는데, 담장 없고 창 크다고 열린 집, 열린 사회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집에서는 편하게 생활하고 편하게 쉬어야 하는데 마당을 통해 창 안으로 모든 게 훤히 보이면 편한 생활이 되겠어요? 마당을 즐기려고 만든 큰 창에는 밤낮으로 블라인드를 내리고 살아야 하고, 낮 동안 집을 비울 수밖에 없는 현대인의 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창 마다 보기 싫은 경보장치를 덕지덕지 달아야 하지 않나요?
담장 높다고 이야기 못 하고 대문 있다고 이웃 간에 왕래 못 하는 건 아니잖아요. 저는 건물 모양으로 개방과 폐쇄를 논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기능해야 하는 것들이 제대로 기능을 못하는 것이 더 문제이니, 결국 그런 것까지 고려해 지침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활동하는 몇 안 되는 여성건축가 중 한 명이라서 작업에 이목이 집중됩니다
순수한 작업 내용으로만 보면 건축은 여성에게 잘 맞는다고 생각해요. 특히 주택에서는 안주인이 주인공 아닌가요? 그래서 여성 건축가가 설계를 하면 결과물이 다를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요새는 가사분담을 공동으로 한다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선 여자가 대부분의 집안일을 하기 때문에 여성 건축가가 주택에서의 삶을 배려하는 부분도 남다르죠. 남자들이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 배려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여자라서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나요
작업 외의 부분이 버거울 때가 많아요. 이건 동서양을 막론하고 공통된 것 같아요. 제가 프랑스에서 공부를 마칠 때 선생님께서 이렇게 마지막으로 격려해 주셨어요. “수진, 너는 좋은 건축가가 될거야. 그렇지만 여자라서 힘든 부분이 많을 거야. 프랑스도 그렇거든.” 그때만 해도 체감을 못 했는데, 실제 일을 해보니까 정말 그렇더라고요. 

설계 외적으로 힘든 부분은 뭐가 있나요
아직도 우리 사회는 건축은 남자의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집을 짓는다는 것은 거친 현장과 큰 돈을 관리하는 거잖아요. ‘여자가 과연 공사현장을 잘 통제할 수 있겠어? 여자인 네게 내 재산을 맡겨도 되겠나?’라는 느낌을 종종 받아요. 그래서 여성 건축가라는 꼬리표를 달지 않으려고 더 정확하고 치밀하게 때로는 거세지는 것 같아요. 현장에 가면 시공사에게 화를 내기도 하지만 보란 듯이 저희 직원들의 실수를 더 나무라는 쇼맨십을 발휘하기도 하고, 정말 심각한 부분이 생기면 만족스러울 때까지 몇 번이고 재시공하는 경우도 있어요.

건축가란 직업, 딸이 있다면 추천하시겠습니까
나중에 딸이 건축가가 되겠다면 말릴 거예요. 너무 힘들 때가 많으니까요. 근데 다음 생에 저보고 또 건축할 거냐 물으면 저는 할 것 같아요. 그림이 실물이 되어가는 걸 보는 건 정말 엄청난 희열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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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님의 작업을 보면 여자임을 잊을 만큼 과감함이 엿보여요
원래부터 치장하는 걸 잘 못했어요. 그래서 학생 시절 오밀조밀 작업하는 선후배들이 정말 부러웠어요. 그렇지만 나에게 없는 재능을 아쉬워해야 소용없고, 가진 걸 찾고 그것을 발전시키다보니 이런 건축어휘까지 온 것 같아요.
건축 또한 없는 것을 만들어 내는 작업이지만 궁극적으로 다시 아무것도 없는 빈 곳을 만들어야 하는 작업이죠. 채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살기 위한 빈 곳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해요. 저는 그 비어있음이 아름다운, 화장보다는 본판이 좋은 얼굴을 만드는 건축가이고 싶어요. 생얼이 예쁘면 화장을 할 필요가 없고, 화장을 하면 더 예쁠 테지요. 건축도 똑같다고 생각하거든요. 아시겠지만 생얼로 예쁘기가 얼마나 힘듭니까.(웃음)

본판이 좋은 건축이란 말이 참 와 닿습니다. 기본에 충실하단 의미겠지요
비싼 재료로 마감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골격 자체가 좋아야 해요. 그게 바로 덩어리 자체의 비례감인데, 이게 제대로 되어야 재료들이 효과를 발휘해요. 뼈대가 잘못 되면 나머지 것들을 바로 잡는 데 비용과 노력이 얼마나 많이 드는지 몰라요. 가끔 콘크리트를 붓기 직전의 거푸집이라도 잘못 되어 있으면 재시공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제가 설계한 집은 재료보다 인건비 단가가 더 비싼 편이에요.

결과를 보면 쓰인 재료도 고급스러운 느낌입니다
저는 저렴하고 보편적인 재료를 ‘잘’ 쓰는 데 집중하는 편이에요. 그 재료가 가진 물성이나 질감을 살려 개성있게 보이도록, 또 집과 어울리게 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해요. 그래서 중국에 재료를 찾으러 가기도 하고요.(웃음) 드라이비트나 컬러강판 같은 싼 재료를 외장재로 쓰기도 해요. 비싼 천을 사다 솜씨 없는 재봉사가 만들면 꽝이 되지만, 볼품없는 천이라도 솜씨 좋은 옷쟁이가 만들면 멋들어지잖아요. 저는 후자를 택하는 거죠.

결과까지 좋은 집을 만들려면 설계뿐 아니라 시공도 중요하겠어요

시공이 잘 안되면 설계를 아무리 잘해도 무용지물이 돼요. 그림과 실물이 다르게 끝나는 경우가 많거든요. 시공사 선정이 그래서 중요하고, 그런 이유에서 가능한 감리도 꼭 하는 걸 원칙으로 해요.

건축주가 시공사를 선정할 때 어떤 항목을 확인해야 하나요
시공사가 지은 집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 어떤지 직접 물어보는 게 제일 좋아요. 이게 어렵다면 내 집의 이미지와 가장 비슷한 주택을 시공한 곳을 찾는 겁니다.
첫째는 시공사의 주 시공 영역에 주택이 포함되어 있는지를 확인해야 해요. 주택은 아주 디테일한 부분까지 완성도 있게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오피스나 아파트같이 다수가 사용하는 현장 전문 시공사는 주택 현장에 와서 엄청나게 고생해요. 단지 브랜드에 치우쳐 시공사를 선택한 후 서로의 관계가 불편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지요.
둘째로 시공사가 완공한 기존의 주택이 어느 정도의 완성도를 가지고 있는지 봐야 해요. 같은 돈으로 90%를 만족시키는 업체가 있고, 70% 밖에 만족시킬 수 없는 업체가 있어요. 그게 시공사의 관리 능력이에요.
그런 다음에 받는 게 ‘견적’이에요. 앞의 두 조건에 부합하는 몇 업체를 선정한 다음 정확한 견적을 의뢰하는 거죠. 그런데 일반적인 관행은 앞선 두 전제조건을 확인하기도 전에 견적부터 받아보고 낮은 금액 순서로 결정하곤 하죠.

견적이 합리적인지 구분하는 방법이 있나요
비슷한 능력의 업체들이 견적을 제출했다면 가격차이가 많이 나는 업체는 제외하고 평균치와 가장 유사한 금액을 제시한 곳으로 선정해요. 대신 각 업체의 특성과 그들이 제시한 조건 또한 면밀히 검토해야 합니다. 싸게 들어온 견적가의 유혹은 뿌리치기 쉽지 않아요. 하지만 세상에 싸고 좋은 걸 만나는 행운이 그리 쉽게 오나요? 유통되는 자재와 인건비 등급이 어느 정도는 통용되고 있는 실정인데, 터무니없이 싸다면 나중에 문제가 될 소지를 안고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자에 대한 불안감이 건축주들에겐 늘 있어요
건축은 건축주, 건축가, 시공자 이 세 팀의 궁합이 잘 맞아야 해요. 그리고 팀 결성 후 가장 중요한 덕목은 정확함을 바탕으로 한 상호 신뢰고요. 가끔 건축주가 현장에 들렀다 “고생하십니다”하는 격려와 함께 건네는 커피 한잔에 몸 둘 바를 몰라 하시는 인부 아저씨들을 자주 봅니다. 그런 분위기의 현장에서 어떻게 대충 일을 할 수 있겠어요?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 서로 못 믿으면 피부로 느껴져요. 내 집 지어줄 사람들이니까 서로 믿고, 참고, 존중했으면 좋겠어요. 집은 한 번 잘못 지으면 오랫동안 애물단지가 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현실적으로 건축주가 제일 힘들어져요. 돌이켜 보면 과정이 즐거웠던 현장이 결과도 좋더군요.

건축가를 찾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건축주가 좋은 건축가를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해요.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기대치에 최고의 가치까지 더해줄 수 있는 첫 번째 파트너가 건축가거든요.
건축주는 자신이 원하는 요구사항을 면밀히 분석하고, 이왕이면 비용 대비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건축가를 찾는 게 중요해요. 건축은 상당히 전문적인 분야이기 때문에 건축주 본인이 디자인하고 현장에서 직접 잘잘못을 따지기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을 겁니다. 건축가이든 시공자이든 전문가를 제대로 활용하는 것 즉, 설계가 의도대로 되었는지 그리고 공사감독은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더 중요해요. 그게 좋은 건축가를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건축주의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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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생활이 벽으로 둘러싸인 중정으로 보장되는 집, 판교에 들어선 주택 ‘White Cube Sugar’ 사진 남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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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멎져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