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소주택의 백색 미장마감이 공식처럼 여겨진 요즘, 과감히 선택한 진회색의 외관이 주변의 한옥 지붕과 절묘하게 어울린다. 그러나 내부에는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마치 야누스의 얼굴처럼.
초등학생 자녀를 둔 건축주 부부는 소형 평수의 아파트에 살다 아이가 점점 커 감에 따라 넓은 공간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리고 계산을 해보기 시작했다. 면적이나 비용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을. 한국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건 유년기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데, 부모와의 기억과 유대감을 선명하게 새기는 때가 그리 오래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 시간을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이고 재미있게 보낼까 고민한 끝에 내린 한 가지 답은 단독주택을 짓는 것이었다. 아이가 원하는 공간, 자유로운 생활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자 직장과 학교, 인프라, 비용 등 무시할 수 없는 조건들이 줄줄이 뒤따랐다.
선택지가 적은 도시의 젊은 부부를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협소주택이다. 구도심의 자투리땅, 건물과 건물 사이의 틈처럼 보이는 공간에 층을 쌓아 면적을 확보하는 방식. 단가는 높아도 대지면적이 작으니 땅값은 낮아지고, 도시의 이점도 누릴 수 있었다.
학구적인 성향은 집짓기에도 반영되는지, 건축주는 집짓기와 관련된 거의 모든 책을 섭렵했다. 한 권씩 독파해 가던 어느 날, 다소 ‘불편한’ 공통점을 하나 발견한다.
“이 책들은 독자로 하여금 ‘집을 지어라, 이렇게 해보라’ 권유하고, 소개하는 데도 다 읽고 나면 집을 짓는 게 무서워져요. 과장을 보태면 집을 지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까지 들게 만들더라고요.”
그가 꺼낸 다음 말 역시 날카로웠고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집짓기에 성공했다고 하는 분 중 인테리어를 하거나 건축업 종사자의 비중이 높아 보였어요. 그런 분들이 잘하는 건 당연하죠. 저 같은 일반 샐러리맨은 두려움이 앞서요. 그래서 내린 결론이 책을 참고하되, 나는 나의 길을 가야겠다는 거였어요.”
HOUSE PLAN
대지위치 ▶ 서울시 성북구 | 대지면적 ▶ 74.94㎡(22.66평) | 건물규모 ▶ 지상 5층 | 건축면적 ▶ 43.20㎡(13.06평) | 연면적 ▶ 146.85㎡(44.42평) | 건폐율 ▶ 57.65% | 용적률 ▶ 195.96% | 주차대수 ▶ 2대 | 최고높이 ▶ 16.9m
구조 ▶ 기초 – 철근콘크리트 매트기초 / 지상 – 철근콘크리트 | 단열재 ▶ 비드법보온판 2종1호 120mm | 외부마감재 ▶ STO(진회색) | 창호재 ▶ KYC 창호 70mm 삼중창호 | 에너지원 ▶ 가스보일러
전기·기계 ▶ ㈜다우티이씨 | 설비 ▶ 해원설비 | 구조설계 ▶ SDM 구조기술사사무소 | 시공 ▶ 투핸드디자인 | 설계 ▶ ㈜공감건축사사무소 이용의
상호 간 신뢰하면 최선의 이익을 얻지만, 서로 믿지 못하면 최선이 아닌 차악의 결과를 얻는 게임이론 ‘죄수의 딜레마’. 정보의 비대칭성이 심한 집짓기 시장에도 여지없이 대입되곤 한다. 건축주는 그 신뢰의 이익을 높이기 위해 건축가를 열심히 찾아다녔고, 다수의 협소주택 작업을 해 온 공감건축사사무소 이용의 소장을 파트너로 삼았다.
땅 찾기가 시작의 반이라고도 하는 협소주택. 역세권일 것, 차량 접근이 용이할 것, 동네만의 개성이 있을 것, 이렇게 세 가지 조건을 걸고 수소문하며 찾은 지금의 땅을 두고 건축주는 “땅은 마치 운명의 상대를 만나는 것과 같아요. 많이 보다 보면 이 땅(사람)을 놓치면 후회할 거라는 감이 오죠”라며 만족감을 드러낸다. 지하철역에서 도보 5분 거리, 대학가 방면과 삼청동으로 바로 이어지는 입지와 최근 들어서는 소소한 가게들까지. 건축주 가족에겐 더할나위 없는 조건의 땅이었다.
INTERIOR SOURCE
내부마감재 ▶ 벽, 천장 – 헤펠레 아우로 친환경페인트 백색 도장 / 바닥 – 대리석타일, 석재타일 | 욕실 및 주방 타일 ▶ 윤현상재 | 수전 등 욕실기기 ▶ 아메리칸스탠다드, 5mm Treemme, 한스그로헤 | 붙박이가구 올라운드 스튜디오 정평곤 실장 | 계단재·난간 ▶ 타일 + 유리 난간
조건이 열악하기에 건축가에게 요구한 건 많지 않았다. 아이를 위한 재미있는 공간과 아내를 위한 널찍한 욕실과 주방 정도. 세 식구가 어딜 가든 똘똘 뭉쳐 다닐 정도로 가족 간의 결합도가 유난히 높기에 지금 당장은 방을 애써 분리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미리 말해두었다.
1층은 주차 용도로만 면적을 할애했다. 차고 문을 닫고 바로 실내로 올라갈 수 있도록 별도의 출입구도 냈다. 생활에서 꼭 필요한 공간, 외출 후 바로 사용하는 공간을 저층에, 거실이나 다실, 아직 힘이 넘치는 아이 방은 상층에 배치했다.
진회색 외관과 달리 내부 인테리어는 전체적으로 벽과 바닥 모두 화이트 톤으로 맞추고 조명이나 의자 등에 포인트로 힘을 실었다. 아파트나 2층 주택은 한눈에 공간이 보여 실내에도 통일감이 중요한데, 공간이 분리된 협소주택은 층마다 조금씩 달라도 크게 어색하지 않다는 생각에 조금씩 색상을 달리하거나 패턴을 입히는 등의 위트를 더했다.
믿을 만한 건축가를 만났다 해도 집짓기는 역시 쉬운 일이 아님을 털어놓는 건축주 부부. 다시는 못 할 것 같다는 아내와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거라는 남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짓기를 추천한다. 과정이 힘들지만, 끝났을 때 오랫동안 누릴 행복과 자유라는 선물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건축가_ 이용의 [ ㈜공감건축사사무소]
2012년부터 한국 도시주거의 새로운 대안을 찾기 시작했으며, 척박한 건설 환경에서 젊은 건축가의 역할과 자립을 위한 방법으로 한국형 협소주택(積恩集)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개별의 건축을 집합의 건축으로 확장하고, 새로운 도시주거모델 대안, 빈집마을, 건축학교 등 다양한 형태의 실험을 진행 중이며, 다각적 시선에서 도시재생 활동에 참여할 계획이다. 010-9226-7920|http://kinfolks.kr
취재_ 조성일 | 사진_ 변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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