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은 요리하는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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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정혜정 자료제공ㆍ베른하우스
저는 부엌을 ‘주방’이라 부르기를 좋아합니다. 주부가 가장 오래 머무는 공간이기도 하고, 요리뿐 아니라 사색과 고민을 함께하는 곳이기 때문이지요. 문이나 벽으로 나뉘어 있지는 않지만 제게 부엌은 하나의 독립된 방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주방이 다른 공간과 분리되어서는 안 됩니다. 주방과 거실, 거실과 방이 하나 되는 공간 배치는 그 자체로 멋스럽죠. 지중해가 바라보이는 남프랑스 집들을 살펴보세요. 현관, 침실, 거실, 주방, 테라스, 지중해의 수평선까지 모두가 하나의 공간으로 조화롭게 연결되어 있답니다. 마치 아티스트들의 작업 공간처럼 실용 소품 하나하나도 감각적인 예술 도구 같아 보이지요.
주방을 꾸밀 때는 부엌살림의 규모를 미리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특히 작은 집은 살림살이의 지혜로운 배치와 공간 활용을 위해서 더욱 세밀한 공간 계획이 필요하지요. 가전제품의 특성과 크기를 꼼꼼하게 따져보고 시공 설계자와 상의해야 합니다. 아울러 분리된 공간을 최대한 줄이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일상 공간이 분리되면 분리될수록 사고가 분리되고, 통합적으로 보는 안목을 키우기 어렵습니다.
우리 집 주방은 거실에서 살짝 걸쳐 보입니다. 조리대와 식탁 사이에 있는 작은 아일랜드 테이블은 간식을 올려놓거나 아이와 함께 마주 서서 요리하는 곳이지요. 때로는 아빠가 생선을 손질하며 마음껏 어지르는 공간이 되기도 합니다. 아일랜드 테이블은 계절이 바뀌면 색을 바꿔보기도 합니다. 전체를 칠하는 일이 번거로울 때는 원하는 색으로 라인을 한두 줄 그어봅니다. 여름에는 시원한 하늘색이나 초록 이파리 색으로, 겨울에는 따뜻한 코코아색이나 포근한 크림색으로 분위기를 바꿔보지요.
해가 지기 전까지는 주방에 불을 켜지 않아도 될 만큼 밝은데, 크고 작은 창이 삼면에 있기 때문입니다. 식탁 옆으로는 일부러 큰 창을 냈습니다. 바깥 풍경을 보며 식사를 하고 싶어서요. 창에는 각각 다른 크기와 모양의 리넨 커튼을 달았습니다. 남은 천을 활용해 자르고 꿰맨 것도 있고, 자투리 레이스를 엮어서 만든 것도 있습니다. 주방 전면에는 서까래를 기울게 받쳤습니다. 크림색의 벽과 잘 어울리는 오래된 나무 기둥들이 화사한 주방의 분위기와 조화를 이루어 따뜻하고 아늑합니다. 싱크대 하부는 타일로 깔끔하게 마감했고, 대신 문짝을 나무로 택해 따뜻한 느낌을 살렸지요.
우리 집은 세 식구인데다가 먹는 양도 그다지 많지 않아 요리하고 나면 늘 남는 재료가 생깁니다. 냉장고에 다시 넣어 보관하기도 그렇고, 매일 같은 요리를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죠. 그럴 때 저는 주방 목창 앞에서 자투리 재료를 말립니다. 먹고 남은 채소는 얇게 잘라 말리거나, 데쳐서 채반에 넓게 펼쳐 말리지요. 말리는 정도에 따라 가루를 내면 양념이 되고, 육수를 내는 재료도 되고, 물에 불렸다가 바로 조리해 먹을 수 있는 재료도 된답니다. 바구니 속에서 보라색 가지나 빨간 고추, 누워 있는 노란 귤껍질이 바람에 움직이는 모습이 또 하나의 주방 속 풍경이 되기도 하고요. 저에게 한가로운 시간이 생긴다면 주방에서 아이와 함께 종일 요리하고 싶습니다. 함께 무엇을 만들지 정하고, 수다 떨며 장을 보고, 웃고 요리하며 즐거운 식탁을 준비하는 거죠. 온 식구가 함께 완성된 요리를 먹으며 품평회도 해보고, 시간이 지나면 우리가 만든 요리들을 모아서 요리책도 만들어볼 겁니다. 이렇게 주방은 우리 세 식구의 추억이 담긴 또 하나의 방이 되어갑니다.
글ㆍ정혜정
프로방스와 독일식 건축디자인 전문 회사인 베른하우스의 수석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대학에서 미술교육과 서양화를 전공했고, 어린 시절부터 집을 구상하고 만드는데 재주가 있었다. 엄마이자 아내인 주부의 삶이 행복할 수 있는 집, 가족들이 사랑으로 휴식할 수 있는 집을 짓고자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 「행복한 집짓기(2012)」가 있다. 031-8003-4150 www.bernh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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