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 월간 <전원속의 내집> 2013년 2월호 편집장 레터 / 착한 건축주 증후군, 치료 좀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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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건축주 증후군, 치료 좀 합시다


한국 사람들은 정이 많다. 건축현장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이왕이면 아는 사람’,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인식이 관계를 형성한다. 내가 모은 자산으로 내집을 짓는데, 독한 마음으로 접근하는 사람이 없다. ‘내가 괜히 이런 행동을 해서 오히려 공사를 잘못 하진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건축주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착한 건축주 증후군은 젊은 세대에서 더 심각하다. 개인주의적이고 합리적이라 여겨지는 젊은 층이 왜 집짓기에만 나서면 위축되는 것일까. 현장에서 본 이유는 이렇다.


첫째, 전문성과 분야의 문제이다. 요즘 사람들은 무엇이든 인터넷으로 먼저 정보를 찾는다. 수많은 블로그와 카페를 통해 집짓기의 여러 행태를 접하고 나면, 앞으로 본인에게 닥칠 험난한 건축 여정이 눈앞에 펼쳐진다. 건축이 전문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방대한 데이터는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 건축전문가라 불리는 이들 앞에서 자신감을 상실하는 것이다. ‘잘 모르는데, 괜히 우기지 말아야지’ 이 같은 자기 합리화가 시작되면, 집짓기의 주체가 바뀌는 것은 시간문제다.

둘째, 비용이란 걸림돌이 있다. 우리 부모 세대에게 전원주택이나 주말주택은 부의 상징이기도 했다. 돈은 목소리에 힘까지 싣는 능력이 있다. 그들은 어떤 현장,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바를 피력하는 데 거침이 없다. 막무가내식 요구도 있겠지만 일단 잃을건 없다. 반면, 전재산에 대출까지 얹어 집을 짓는 것은 단계단계가 전쟁과 다름없다. ‘건축비가 이것 밖에 없는데 어떻게 안 될까요?’ 젊은 건축주들은 주저하며 말을 꺼낸다. 전혀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집을 짓는 주체는 나고, 한정된 예산 안에서 제대로 짓는 것은 전문가의 역할이다. 이 당연한 명제를 가슴에 품고 집짓기에 나서야 한다. 한 건축가를 만나 미팅했다고 다른 건축가와 상담하는 것은 도의가 아니라 생각하는 착한 건축주들이 있다. 완성된 설계안으로 공사 견적서를 요청할 때, 여러 시공 회사에 보내도 될 지 주저하는 착한 건축주들이 있다. 공사 중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어도, 괜히 말을 꺼내 시공자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 좋을 게 없다 생각하는 착한 건축주들이 있다.

이들은 착한 건축주 증후군에 빠져, 스스로 집을 망치는 주범으로 전락하고 만다.

질 높은 건축 서비스는 건축주로부터 나온다. 단단하고 독하게 당연한 권리를 요구하자. 건축문화 발전은 착한 건축주 증후군을 버리는 데서 출발한다.


편집장 이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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