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 월간 <전원속의 내집> 2012년 7월호 편집장 레터 / 건축가 vs 집장사, 그 전쟁의 서막
본문
월간 <전원속의 내집> 2012년 7월호 Vol. 161 편집장 레터
건축가 vs 집장사, 그 전쟁의 서막
건축을 준비하며 맨 처음 봉착하는 땅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다음은‘설계’라는 보이지도 않는 대상과 마주합니다. 건축 설계는 응당 건축가가 할 일이지만, 일반인들은 건축가 만나기를 주저합니다.
“건축가가 멋들어지게 설계한 집에 왜 살고 싶지 않겠어요? 다만….”
‘건축사’라는 타이틀은 고고하고 엄숙한, 뭔가 다가가기 힘든 면이 있습니다.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비용입니다. 1, 2억원대 집을 지으면서 2, 3천만원을 설계비로 지불한다는 것이 쉽게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그 돈이면 아이방에 가구도 바꿔주고, 욕실에 원하던 월풀 욕조도 들일 수 있으니까요.
그래도 욕심에 만나라도 볼라치면, 그들을 어디서 찾아야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름만 대도 아는 스타건축가들이야 검색 한 번이면 나오지만, 그들이 평범한 내 집에 관심이나 있을까요. 젊고 실력 있고, 주머니 사정도 같이 걱정해 주는 그런 건축가들 찾기는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입니다.
이런 척박한 상황에 요즘 솔깃한 소식들이 들려옵니다. 동네에 터를 잡고 집짓기를 훈수하는 건축가들이 나타났다는 겁니다. 영국 런던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건축가 오상훈 씨는 홍대 앞에‘제비다방’을 열고 동네 놀이터를 만들었답니다. 주민과 예술가가 한데 섞여 공간을 구축하는 새로운 유형의 건축입니다.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건축가 신호섭ㆍ신경미 씨도 북촌 한가운데 사무소를 내고 건축에 대한 소식지도 만들고 있습니다. 일상의 건축, 보통의 건축을 지향하며 동네 사람들에게 건축에 대해 묻고 다닌다지요.
‘문화도시연구소’를 운영하는 건축가 주대관 씨는 일찌감치‘농촌형 저에너지 임대주택’을 지으며 농촌 건축을 고민해 온 보기드문 건축가입니다. 최근에는‘성북도원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연구소가 위치한 성북동 일대 2천여 채 집들을 답사하고 있지요. 그는“동네 건축가가 자기 지역에 대해 조사하고 데이터를 통해 대안을 내놓는 선례를 만들고 싶다”고 취지를 밝혔습니다.
‘딸과 함께 떠나는 건축여행’으로 유명한 건축평론가 이용재 씨는 얼마 전, 집에 대한 새로운 기획을 내놓았습니다. 조남호, 조정구, 조한, 윤재민, 문훈, 서현, 김창균, 정수진, 정현아, 김주원 총 10명의 재기발랄한 건축가들을 모아 ‘인문학적인 집짓기’를 한다는군요. 현재 블로그를 통해 신청을 받고 있는데, 건축비는 평당 6백만원(지방은 50만원 추가, 설계비 포함)으로 떡 하니 공표까지 해두었습니다. 이들의 톡톡 튀는 기획이 어느 정도 수확을 거둘 지는 지켜봐야겠습니다. 이러한 문화적 현상이 지방 구석구석까지 전파되려면 건축가 수도 턱없이 부족하고 시간도 오래 걸리니까요. 단, 정체성 없는 집에 이윤만 터무니없이 남기는
집장사들은, 슬슬 긴장해야겠습니다. 집은 단지 짓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는 내내 특별한 일상을 만들어 주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건축가와 집장사의 보이지 않는 전쟁은 이제 막 시작되었습니다.
편집장 이세정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