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 월간 <전원속의 내집> 2013년 1월호 편집장 레터 / 우리집 화단에 나를 묻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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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화단에 나를 묻어 주세요


새로운 해를 맞는 정월, 난데없이 ‘죽음’을 주제로 책의 서문을 연다. 서양 속담에 살면서 결코 피할 수 없는 두 가지가 있으니 바로 ‘죽음’과 ‘세금’이란 말이 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당면하는 문제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애써 부인하고 도외시하는 문화가 있다. 현세를 중시하는 오랜 유교적 영향 때문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죽음을 금기할 수 없다. 노년 인구가 급격하게 늘고, ‘웰빙(Well-being)’에서 ‘웰다잉(Well-dying)’을 논하는 시대가 왔다. 급격한 장례 문화의 변화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 화장(火葬)이 장사 제도의 70% 수준으로 증가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매장하고 묘를 만드는 것을 예의로 생각했던 사람들이 이제 후손을 위해 납골당과 자연장지를 택한다. 특히 수목장(樹木葬)으로 대표되는 자연장지에 대한 선호도는 눈에 띄게 늘어났다.


자연장은 유골을 화장해 한지로 싸서 나무나 화초 아래 묻는 친환경 장례 방식이다. 흙과 분골을 섞어 잔디 마당 아래 묻는 잔디장도 여기 포함된다. 나무에 고인을 표시하는 작은 표지를 매달 수 있지만, 법적으로 유골 외에는 어떤 것도 함께 묻을 수 없다. 영국이나 프랑스, 일본에서는 이러한 수목장이 보편화되어, 살아있을 때 좋아하는 꽃나무를 골라 애지중지 가꾸는 모습을 흔치 않게 볼 수 있다.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형태의 자연장이 늘어날 전망이다. 정부는 이르면 올해 하반기부터 집 안에 자연장지를 만들 수 있게 하는 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도심의 주택밀집지역을 제외한 읍ㆍ면 단위 지역은 대부분 해당 사항으로, 여느 시골집이면 자연장지가 가능하다. 이는 우리의 장례 문화가 급변하는 큰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납골당을 사는 대신 시골의 빈집을 구한다고 가정해 보자. 생전에는 주말 여가용으로 쓰다, 죽으면 그 집 마당에 묻힌다. 자녀들이 그곳을 가꿔 주말주택으로 삼고, 명절이나 행사 때 모여 가족의 희로애락을 나눈다. 자녀 입장에서는 늘 부모가 한집에 있는 것 같은 큰 위안이 될 것이다. 이쯤 되면 그 어느 곳보다 명당이 아닐까.

“훌륭하게 살아가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언제라도 죽을 준비를 하는 것이다. 죽음에 임박하면 목적이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하고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모리 슈워츠의 ‘모리의 마지막 수업’이라는 책의 한 글귀다. 삶의 한복판에서 죽은 후 거처를 생각하는 것은 더 이상 우울한 일이 아니다. 마당을 가꾸고 그 안에 좋아하는 나무와 화초를 심고, 내가 죽어 이들과 함께 자연에서 살 수 있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처럼 항상 같이 간다. ‘웰다잉’이 바로 ‘웰빙’이다.

 

편집장 이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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