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 월간 <전원속의 내집> 2012년 11월호 편집장 레터 / 꽃밭에 대한 경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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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밭에 대한 경외
예전에 취재 차 들렀던 충청도의 한 마을에서 길섶에 코스모스와 쑥부쟁이가 흐드러지게 핀 광경을 목격했다. 차도는 물론이고 농로와 비탈길까지 모두 꽃으로 덮인, 그야말로 황홀한 꽃대궐이었다. 유심히 보니 집집마다 안마당에도 꽃밭이 있었다. 넉넉지 않은 시골 형편에 화초를 가까이 두고 가꾸는 여유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당시 마을의 어르신 한분이 궁금증을 풀어줬다.
“언제부터 이렇게 꽃을 심었는지 몰라. 그냥 옛날 분들이 심고 살았으니 꽃씨가 계속 떨어지고, 한해 지나면 더 많이 피지. 저기 강원도에 갔더니 이런 집들 찾기가 힘들더라고.”
먹고 살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한 평야 지대일수록, 텃밭을 양보해 꽃밭을 만들고 이를 즐겼을 거라 생각해 본다. 실제로 남해 5도를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 정도 수긍되는 면이 있기도 하다. 이제는 시골을 다니다 보면 집보다 마을길을 먼저 보는 습관이 생겼다. 요즘에야 농촌환경 개선사업으로 예산을 들여 꽃길을 만드는 마을이 많다. 겉으로는 ‘텃세 없는 열린 마음’으로 방문객을 환영한다는 뜻이라는데, 한창 농사철에 화초 심기 용역을 나가야 하는 시골 사람들의 불만도 간간히 들리곤 한다. 자기 집 마당에 꽃 한 포기 심지 않던 사람이, 마을길에 꽃을 심으려니 그 이해 못 할 속내가 나는 이해가 간다.
주변의 누군가가 꽃밭 가꾸는 일이 취미라고 한다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아직도 많은 이들이 가드닝은 시간과 돈이 많아야 누릴 수 있는 호사스러운 취미라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이 이야기를 정원 애호가들이 듣는다면, 불같이 화를 낼 것이 뻔하긴 하다. 그들에겐 아침저녁으로 쉴 새 없는 육체노동, 땅과 기후 상태에 늘 촉각을 세워야 하는 예민함, 살아 있는 생명과 함께 가야 한다는 책임감, 이 모든 것이 기본자세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완벽한 정원을 보면 무서울 때가 있다. 내가 즐기는 정원이 보여주기 위한 정원이 되기 시작하면, 피곤한 일이 된다. 원하는 꽃이 있으면 씨를 구해 뿌리고 가끔 물이나 주며 지내는 정도가 적당하다는 생각이다. 어느 날 문득 꽃이 핀 걸 발견하면, 정성스레 가꾼 것보다 두세 배 더 기쁠지도 모르겠다.
정원을 가꾸는 취미는 시간과 돈이 아니라, 마음의 여유가 먼저다.
안마당에 텃밭 대신 꽃밭을 가꾸던, 그 마을 사람들의 마음도 같지 않았을까?
편집장 이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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