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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민이 시골에서 돈 벌 수 있을까?
가뜩이나 어려운 시골에 가서 도시민들이 무엇으로 생업을 유지할 것인가? 자연의 품이 아무리 좋더라도 생업이 불안정한 곳에 대책 없이 꿈꾸듯 가는 것이 내키진 않는다. 도시민 유치를 위해 지자체가 아무리 정책을 쏟아낸다고 해도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물음은 ‘뭐 먹고 살수 있나?’일 것이다. <편집자 주>
농촌 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은 경제적 문제를 시골생활의 가장 큰 걱정으로 꼽는다. 아이들 교육이나 병원, 이웃 주민 관계 등에 대한 두려움의 밑바탕에도 이 문제가 직결되어 있다. 농촌에서 도대체 무얼하며 먹고 살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은 없지만 귀농ㆍ귀촌인을 조사하고 행정에서 지원 업무를 맡은 경험으로 몇 가지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살기좋은 농촌은 어디에 있을까?
모두가 잘 알다시피 지금 농촌은 농사 짓고 먹고 살기 힘들다. 농사를 크게 하는 사람일수록 겉으로는 소득이 많아 보여도 속으로는 농가부채로 신음한다. 소득의 양극화는 도시보다 오히려 더 심각한 상황이다. 이런 현실은 도시화와 수출 정책, 농산물 개방 등 구조적인 요인 탓이 크다. 그만큼 개인의 노력으로 풀기 힘든 측면이 강하다.
농촌 주민들도 떠나는 마당에 도시민들이 귀농ㆍ귀촌을 해도 똑같은 문제에 부딪히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살기 좋은 농촌이라면 기존 주민들도 떠나지 않고 귀농ㆍ귀촌인도 넘쳐날 것이다. 불행히도 이 세상에는 그런 농촌이 없다. 귀농ㆍ귀촌을 희망하는 도시민들이 꿈꾸는 ‘이상향’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스스로 참여하여 만들어갈 수밖에 없고, 그런 관점에서 귀농ㆍ귀촌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많은 도시민들이 착각을 한다. 마치 그런 농촌이 어딘가에 있을 것처럼….
농촌의 파이를 함께 키우려는 자세
농촌이 필요로 하는 사람은 사실 전업 농사꾼이 아니다. 오히려 농업 자체는 잘 몰라도 농산물의 가공과 직거래 유통, 새로운 특산물 상품 개발 등의 분야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또 아이들 교육과 복지, 문화 분야를 담당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이런 부분은 농촌 주민들이 잘하지 못하는 분야에 해당한다. 그렇지만 농촌이 사람 사는 공간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영역들이다.
농촌 생활을 꿈꾸는 도시민들이 농촌에 들어와 환영받고 존경받기 위해서는 이런 영역을 개척해야 한다. 전업적인 농업을 지향하면 농지 임대나 보조금 지원 등을 둘러싸고 지역 농민과 당장 갈등관계에 들어가게 된다. 좁은 국토에서 농지는 한정되어 있고, 게다가 음성적이지만 부재지주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넓은 농지를 찾다보면 결국 동네 어르신 땅을 ‘빼앗는’ 결과가 된다.
농촌 주민들과 공생하면서 재미있고 보람되게 살기 위한 지혜는 이렇게 농촌 주민들이 잘 못하는 분야에서 찾아야 한다. 예를 들어 문화적 색깔을 입힌 새로운 상품(공예품 등) 개발, 산촌유학이나 방과후학교와 같은 대안교육 영역, 노인복지나 다문화가정을 담당하는 영역, 그리고 생태건축과 공공미술 같은 예술 영역 등이다.
물론 이런 영역은 수요자(시장성)도 적고 성공사례도 많지 않다. 그래서 어려운 것은 분명하지만, 또 한편으로 새로운 시장 영역인 것도 분명하다. 이런 분야를 사회적 일자리 영역이라고 부를 수 있다.
사회적 일자리 영역에 주목해야
농촌에서 새로운 시장 영역인 사회적 일자리를 개척하기 위해서는 나름대로 오랜 준비기간이 필요하다. 도시에서 큰 기업을 운영했던 경영인이라도 농촌의 조그만 가공공장 CEO 역할은 더 어려울 수 있다. 농촌의 역사와 구조를 이해하고 사람 관계를 정(情)으로 풀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기업과 농촌은 다른 논리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농촌에서 사회적 일자리 영역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도시에 있을 때부터 미리 준비해야 한다. 단순히 주어진 일자리에 취업하는 것은 ‘죽은 노동’을 하는 것이고 낮은 임금에 재미도 보람도 없다. 새로운 영역은 당연히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누구보다 먼저 생각하고 끈질기게 노력하는 사람에게 기회는 주어진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무엇보다 나 자신(가족 포함)을 잘 알아야 한다. 내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농촌에 응용할 수 있을 것인지부터 생각해봐야 한다. 그리고 응용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몇 가지 병행할 것이 있다. 우선 가까운 곳의 귀농학교를 다니면서 여러 정보를 입수하고 비슷한 생각을 가진 동료를 찾아야 한다. 또 도시농부학교와 같은 기회를 활용하여 텃밭 농사를 몇 년간 경험하고, 생협 회원으로 가입하여 도농교류 체험행사에도 자주 참가하는 것이 좋다. 그러면서 가족 합의를 거쳐 농촌 이주를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시도하고자 하는 분야가 대략 정해지면 예비연습이 반드시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은 농산물 품목으로 승부하려 하는데 이 분야는 그만큼 경쟁이 심하고 누구라도 쉽게 따라 할 수 있어 위험부담이 크다. 연습기회는 현장 귀농학교와 같이 가벼운 것부터 농촌 체재형 마을간사제도까지 다양하다.
자활후견기관도 집수리사업단이나 복지서비스 등의 영역에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최근에는 노동부의 사회적 일자리가 농촌에도 많이 생기고 있다. 이런 기회는 견문을 넓히고 농촌을 자주 가는 사람에게만 주어진다.
귀농1번지, 진안의 다양한 경험
진안군은 귀농1번지를 정책적으로 추진하면서 귀농ㆍ귀촌인과 농촌 주민이 힘을 합쳐 ‘뿌리를 튼튼하게 하는 삶’, ‘살기좋고 살고싶은 마을만들기’를 지향하고 있다. 직접적인 예산 지원은 전혀 없는 대신에 귀농ㆍ귀촌인의 전문성을 존중하여 새로운 일자리를 많이 제공하고, 지역주민들과 갈등을 겪지 않고 잘 정착하도록 지원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정착자금이나 이사비용, 빈집수리비와 같은 정책 지원금은 당장에는 ‘약(藥)’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독(毒)’이 되는 경우가 많다. 혜택을 받고 정착하게 되면 주민들과 갈등이 초래되고 그만큼 스트레스 받는 일이 많아진다. 주민들과 동일한 조건에서 공정하게 지원을 받는 제도가 필요하지 특혜성 제도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진안군은 마을간사와 마을조사단, 평생학습지도자, 방과후교사, 평생학습 프로그램 강사 등을 적극 활용하기를 권장한다. 또한 다양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며 새로운 창업 영역을 스스로 모색하기를 기대한다. 그 과정은 농촌에 들어와 대개 2년 내지 3년 정도의 시간이 최소한 걸릴 것이다. 그 동안 주택이나 농지 구입은 자제하고 충분한 실전 경험을 거친 후에 후회없는 선택을 해야 한다.
살기좋은 농촌을 만들겠다는 스스로의 자세가 중요
농촌 생활에 큰 돈은 필요 없겠지만, 그렇다고 무일푼으로 귀농ㆍ귀촌을 시도하는 것은 당연히 어렵다. 사전에 철저하게 준비하고 농촌의 사회적 일자리를 적절하게 활용한다 해도 초기 정착에 필요한 비용은 적지 않다. 가족이 함께 이주한다면 주택수리비와 초기 생계비 등 최소 5천만원 정도는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다양한 방법이 있기 때문에 정착 비용은 본인의 조건과 의지에 따라 천차만별이 된다.
결국 당연한 말이지만 ‘먹고살기’ 문제는 준비하고 노력하는 자에게만 해답이 주어진다. 농촌의 사회적 일자리 영역을 중요한 해답의 하나로 제안할 수 있지만, 이 조차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같은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학습하고 토론하며 공동의 진로를 모색하면서 ‘함께 만들어가는 것’일 뿐이다. 본인의 노력과 더불어 농촌 주민과 함께 살기좋은 농촌을 만들어 가겠다는 자세가 중요하다. 농촌은 그런 사람을 품어 안고 갈 수 있을 정도의 여력은 남아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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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쓴 구자인(진안군청 전략산업과 마을만들기 담당) 씨는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과 동대학 환경대학원을 졸업하였으며, 서울시정개발연구원과 한국도시연구소에서 도시환경문제와 마을만들기를 조사·분석하고 다양한 활동을 지원하였다. 1998년에 일본으로 유학, 만 6년 반 농촌마을의 역사와 구조에 대해 연구하여 전공으로 농촌개발과 내발적 발전론 농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지역정책과 일본 마을구조, 마을 공동산, 자급순환경제 등에 관한 다수의 논문이 있다. 063-430-2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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