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주택 | [스틸하우스탐구⑦] 시공사례와 함께하는 스틸하우스의 현재와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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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하우스는 과학적이고 환경친화적인 주택의 대명사로, 21세기를 대표할 주거문화의 대안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스틸하우스가 국내에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96년으로 한국철강협회 산하 스틸하우스클럽(現 한국철강협회 강구조센터)이 결성되면서부터이다. 이후 스틸하우스는 단순한 건축 형태의 변화를 넘어 국내 주거문화의 질적 향상에 기여하고 있는데, 그 의미와 현재를 짚어본다.<편집자 주>
지난 1996년 하반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포스코(POSCO)로부터 스틸하우스용 골조자재인 스틸 스터드(Steel stud)를 생산해 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 당시에는 스틸하우스라는 용어조차 생소했었다. 국내에 시공사례라고는 서울과 포항, 광양에 외국기술과 자재로 지어 놓은 모델하우스 몇 동만이 전부였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스틸하우스의 보급 확대를 위해선 자재의 국산화가 무엇보다 절실한 상황이었다. 마침내 RIST(포항산업과학연구원)의 도움을 받아 장님 코끼리 다리 더듬듯 설비를 갖추고 국내 최초로 자재를 생산하게 되었다.
그러나 1년이 지나도록 어느 누구도 자재를 주문하지 않았다. 결국에는 회사에 근무하던 관리이사의 장인을 설득, 적자를 감수하며 경기도 오산에 최초로 국산자재를 이용한 스틸하우스를 지었던 일이 까마득한 옛일처럼 떠오른다.
그로부터 10년.
이제는 유력한 주택공법의 하나로 자리 잡은 스틸하우스의 시공사례에 대해 기술할 수 있게 되었으니 필자로써는 격세지감(隔世之感)과 함께 남다른 감회가 든다.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스틸하우스 전용 구조설계 프로그램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으로 날아가 짧은 영어로 현지 사장과의 담판에 성공하였던 일, 내화에 대한 무지로 740세대의 공동주택을 건설할 기회를 날려 보냈던 쓰라린 기억,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며 일본과 미국의 선진 시공사례를 견학했던 일, 생산설비의 자동화와 단열스터드의 개발 그리고 내화 및 차음 등의 인증을 받기위해 매진했던 일, 일반 대중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지상파 방송의 프로그램인 ‘러브하우스’에 뛰어들어 신동엽, 양진석, 이창하, 김원철 씨 등과 함께 고락을 같이 했던 일, 어설픈 강의 실력으로 전국의 건축사회와 지방자치단체를 순회하며 강연회를 가졌던 일, 역으로 미국, 일본, 중국 등지에 스틸하우스를 수출하며 자부심을 느꼈던 일 등….
생각해보면 스틸하우스에 미쳐 살아온 즐겁고도 고달픈 세월이었다.
스틸하우스의 성공 요인
스틸하우스가 단순히 열정만으로 오늘에 이르렀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주거문화 개선을 위한 포스코의 계획적이고도 합리적인 R&D, 그 결과로 정립된 탁월한 주거 성능, 디자인 중심의 세태에 걸 맞는 표현의 자유로움, 유지관리의 용이함에서 비롯되는 경제성, 우리의 국민성과 상통하는 짧은 공기 등 여러 장점으로 인해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주택시장에 어엿한 하나의 공법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 건축역사상 이만큼의 막대한 예산과 시간이 투입되어 체계화되고 우리 것으로 소화되었던 공법이 있었던가? 과학적 실험에 의해 입증된 데이터를 이처럼 완벽하게 구비한 공법이 있었던가?
아파트를 제외한 국내 주택의 상당수가 우리의 환경과 실정에 맞지 않는 외국의 공법을 그대로 답습하거나 임의로 변경하여 지어지고 있음을 다시금 상기할 필요가 있다.
스틸하우스는 철강강국인 우리나라의 자재를 사용함으로써 건자재의 수입의존도를 줄이고 자원재활용에 의한 친환경성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을 갖추고 있다. 철을 생산하는 원재료인 철광석도 무한자원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고철 수입 국가이다.
4~5년 전쯤 강연회에서 “스틸하우스 한 채를 짓는다는 것은 후손에게 물려줄 10톤짜리 철광산을 만드는 것과 같다”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한 적이 있다.
스틸하우스란 다양한 장점과 의미를 지닌 공법이기에 10년이 채 되지 않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주택시장에서 하나의 선택적 대안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현재 스틸하우스는 단독주택, 저층빌라, 펜션 등의 숙박시설, 상업공간, 학교, 군 시설물, 관공서 등에 다양하게 적용되고 있는데, 단독주택이 차지하는 비중이 90% 이상에 이른다. 유독 단독주택 부분에서 스틸하우스가 강세를 보이는 것은 전술한 바와 같은 장점에 따른 덕도 있지만, 우리나라 고유의 효율성 높은 난방방식인 온돌의 적용에 성공한 것도 한 원인으로 볼 수가 있다.
특히 자유로운 습식온돌의 적용으로 단독주택에서 층간 소음 문제를 해결하고 원가 절감의 효과도 거둘 수 있었다. 이러한 스틸하우스의 여러 기능적인 강점이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에 적합한 주거형태로 인식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발전과정을 통해 되짚어 본 스틸하우스
국내 스틸하우스의 시공사례를 돌아보며 그 발전과정을 더듬어 보는 것도 스틸하우스를 이해함에 있어 의미 있는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 세계적인 건축가인 미스 반 데어 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 : 1886~1969)는 건축행위를 가리켜 “공간 속에 변화되어 가는 시대의 의지”라 하였다.
그런 심오함은 아닐지라도 기술의 발전과 함께 과거보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트랜드의 변화 정도는 음미할 수 있지 않을까?(전체적으로는 더 훌륭하고 아름다운 스틸하우스의 시공사례가 많지만, 자료 확보의 편이성과 맥락의 이해를 돕기 위해 포스홈의 시공사례를 중심으로 다루었다.)
①도입기 : 시작 ~ 1999년
소재 적용에 대한 연구 부족으로 시공이 용이한 드라이비트나 사이딩류의 외장재와 미국식 비닐 윈도우, 아스팔트 슁글 등이 주류를 이루었다. 공간의 분할도 아파트 평면이나 외국 설계의 변형 형태에 불과했고, 실내의 건축적인 배려도 약했다. 실내 색조는 안정적인 체리톤이 주류를 이루었으며, 중저가의 가격대를 형성하였다.
②발전기 : 2000년 ~ 2003년
외장 및 내장에 있어 소재 적용의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졌다. 목재, 석재, 금속 등으로 다양한 외관을 선보였으며, 유럽식 창호와의 접목도 이루어졌다. 점차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에 적합한 공간을 도출해 낸 시기였다.
스틸하우스가 갖고 있는 표현의 자유로움이란 장점이 부각되기 시작했으며, 실내건축에 있어서도 미적 감각을 중시하기 시작하였다. 고급주택의 상징인양 강렬한 월넛(Walnut) 색조가 주류를 이루었고, 중고가의 가격대를 형성하였다. 이 과정에서 소재 적용에 대한 오류로 결로나 누수와 관련된 많은 시행착오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③안정기 : 2004년 ~ 현재
기술이나 디자인의 발전에 안정기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시대가 요구하는 것들을 어느 정도 소화해 낼 수 있다면 웬만큼 안정되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근래의 스틸하우스는 모든 면에서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끊임없는 연구와 경험을 바탕으로 어떤 소재든 적용이 가능해 졌으며, 국내 기술 인력의 양성도 꾸준히 계속되고 있다. 스틸하우스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겠지만 공간의 분할이나 동선의 설정도 과거보다 훨씬 현실적이고 합리적으로 바뀌었다.
디자인 측면에서도 최근의 트랜드 속에서 개성이 중시되고 있으며, 다양성을 겸비하고 있다. 잠시 문제가 되었던 주거 성능의 일부 결점도 보완되었으며, 원가 측면에서도 많은 절감을 이루었다. 탁월한 주거 성능과 자유로운 디자인을 바탕으로 스틸하우스가 고급주택으로 발돋움한 것은 괄목할만한 성장이라 할 수 있겠다.
스틸하우스의 미래
그렇다면 짧은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포스코의 적극적 투자와 노력으로 주택시장에 안착한 스틸하우스의 미래는 과연 어떠할까, 계속적으로 승승장구하며 장미빛 미래를 그려나갈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한다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어느 공법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만인의 취향에 적합한 완벽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제가 지은 집에는 절대 하자가 발생하지 않습니다”라고 단언하는 단세포적인 업자가 명심할 사항이다.
각각의 공법은 분명 그 나름대로의 장점과 단점을 겸비하고 있다. 스틸하우스 분야에서도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을 통해 현재의 주거성능을 더욱 향상시키고, 원가경쟁력을 보다 강화시켜야만 한다. 현재의 스틸하우스 공법에는 ‘가능은 한데 원가경쟁력이 떨어지는 시방’이 상당수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다음은 고객과의 신뢰를 키워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서 얘기한 단세포적인 업자의 자세보다는 “하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지만 만일 발생한다면 책임지고 보수해 드리겠습니다”고 말할 수 있는 솔직함이 필요하다.
최근 스틸하우스 업계를 보면 마치 마산의 아구찜 시장을 보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함을 금할 수 없다. 무엇이 원조이고 무엇이 정통인지 수요자로 하여금 갈피를 못 잡게 하고 있다. 기술의 원류는 분명 포스코라는 한 뿌리인데,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지금은 서로가 협심하여 기술을 발전시키고 고객 만족도를 높여 나가야 할 시점이다. 과대광고는 자승자박(自繩自縛)의 결과를 낳게 되고, 결국 고객의 신뢰마저 잃게 된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홍보의 필요성도 절실하다. 그동안 나름대로 협회 차원에서 상당한 홍보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KBS ‘6시 내고향’의 백년가약 프로젝트를 통해 28개 마을에 스틸하우스를 시공하면서 스틸하우스의 저변 확대는 아직도 멀기만 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다.
심지어는 대학원 강의에 임해서도 스틸하우스에 대한 생경감을 토로하는 건축을 전공하는 학생들과도 직면해야 했다. 주거문화의 개선이라는 명제를 완성시키기 위해서라도 좀 더 적극적이고 광범위한 홍보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기술 인력의 고급화를 추진하여 시공 품질을 향상시켜야 한다. 지금의 시장에서는 기술의 숙련도에 따른 품질의 편차가 심하다고 볼 수 있다. 고객의 신뢰와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기술 인력의 양적인 확대와 함께 질적인 향상을 추구해야 된다.
이와 함께 자재 및 시공 품질에 대한 협회의 보다 강력하고 공정한 관리 감독이 요구된다. 다다익선(多多益善)보다는 검증된 정예(精銳) 인력을 키워내는 일이 고객을 위한 길이고, 긴 호흡으로 시장을 확대할 수 있는 원칙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스틸하우스의 미래를 위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디자인 중심의 마인드를 갖자는 것이다. 현재의 스틸하우스 공법만으로는 최근 램 쿨하스(Rem Koolhaas : 1944~ )나 다니엘 리베스킨드(Daniel Libeskind : 1946~ ) 등을 주축으로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는 해체주의건축(deconstruction)은 고사하고, 르 꼬르뷔제(Le Corbusier : 1887~1965)가 주창한 근대건축의 5원칙조차 충실히 이행하기 어렵다.
현대에 있어 디자인의 중요성은 생활의 사소한 부분까지도 깊이 침투해 있는 습관과도 같은 존재가 되어 버렸다. 최근 유행하는 ‘미술관과도 같은 집’이라는 개념도 단순한 일과성의 트랜드로 간주해야 할까?
아니다. 그것은 시대적인 요구이자 미래지향적인 충고이다. 기술을 개발하거나 원가경쟁력을 높여가거나 그 중심에는 디자인에 대한 깊은 고뇌와 배려가 자리 잡고 있어야만 한다. 이런 노력들이 하나 된 마음으로 이루어질 때, 스틸하우스는 진정한 주거문화 개선의 첨병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예산과 한달 미만의 공기로 완성되어진 KBS ‘6시 내고향’의 백년가약 프로젝트를 통해 선보인 작품 몇 가지를 통해 스틸하우스가 갖는 디자인적 강점을 소개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주문진 ‘나라사랑 공부방’
공주 ‘빛의 상자 : 실루엣’
산청 ‘남사 예담원’
이글을 쓴 황윤현 씨는 (주)포스홈의 대표이사로 한국철강협회 스틸컨스트럭션센터 이사를 역임하고 있다. 또한 김천과학대 도시디자인 계열 겸임교수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으며, 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원에도 출강하고 있다. MBC ‘러브하우스’에 이어 현재는 KBS ‘6시 내고향’ 백년가약 프로젝트의 건축 디자이너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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